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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øjeRum - Spor Af Intet (Vaknar, 2021)

덴마크 전자음악가 Paw Grabowski의 솔로 프로젝트 øjeRum의 앨범. 포는 청자들이 자신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매번 다른 태도를 가져주기를 요구하는 듯하다. 바꿔 말하면 그는 매번 다른 접근을 통해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 낸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몇몇 앨범들에서 보이는 형식적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상이한 음악적 내용을 전달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신의 음악에 접근하기 위한 가이드도 없으며 텍스트로 이루어진 설명도 극히 제한적이다. 오직 그가 제공하는 힌트는 커버 아트와 앨범의 타이틀뿐이다. 어찌 보면 불친절로 보일 수도 있지만, 감상과 해석을 오롯이 청자들의 몫으로 돌리는 당연한 태도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때문에 그의 음악은 모든 것을 개방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이번 앨범은 다소 극단적이다. 앨범에 수록된 곡은 단 두 곡에 불과하며 각각의 제목도 "A"와 "B"로 되어 있으며, 동일한 BPM에 길이도 정확히 30분씩이다. 그렇다고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서로 다른 질감의 사운드 조합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분위기 또한 대비를 이루는 듯하다. "A"의 경우 초고역대가 존재하지 않는 저역 중심의 음향을 보여주지만 "B"는 두터운 중저역대를 근간으로 고역이 앞으로 나온 듯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어 사운드의 특성 또한 다르다. 하지만 두 곡 모두 '무(無)의 흔적'이라는 앨범의 타이틀을 묘사하는 데 있어 집요한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루프를 30분 동안 무한 반복한 듯한 두 곡은, 각각의 주기에 맞춰 미세한 게인의 변화를 통해 '흔적'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이어간다. 듣는 것만으로는 그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기 힘들지만 웨이브 테이블에 걸어 놓고 보면 각각의 순간에 포가 얼마나 많은 탐색의 고민을 이어왔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미세한 변화의 과정이 정서적 고양이나 빌드-업을 향한 것이 아니고, 30분 동안 이어진 반복적 성찰의 연속이었다는 점이 다소 허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어떤 '흔적'을 찾는다는 것의 결론으로는 당연한지도 모른다.

 

202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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