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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ANNA - Intentions (Mercury KX, 2023)

 

ANNA라는 이름으로 포르투갈에서 활동 중인 브라질 출신 DJ 겸 프로듀서 Ana Lidia Flores Miranda의 앨범.

 

DJ Anna 혹은 Anna Miranda 등의 이름으로 활동한 안나는, 10대 초반 시절 상파울루 외곽 시골 아버지가 운영하던 클럽에서 디제잉을 시작하며 지난 20여 년 간의 음악 생활을 이어오게 되었다. 그녀는 여전히 댄스 플로어의 테크노 씬에서 유명한 DJ이기도 하며, 여러 뮤지션들과의 협업 및 리믹스를 통해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2010년 중반부터 여러 편의 싱글과 미니 앨범을 선보이며 테크노, 하우스, 다운템포 계열의 작업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으며, 이와 같은 감각적인 창작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앨범은 지금까지 안나가 선보였던 통상적인 작업의 흐름과는 다른 음악적인 결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 작곡 혹은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전문성을 지닌 Mercury KX을 통해 앨범의 발매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물론, 기존의 감각적 요소를 배제한 앰비언트 계열의 일렉트로닉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여기에 일부 트랙에서 Laraaji와 East Forest 등과 같은 비중 있는 뮤지션이 안나와 함께한 협업을 담고 있어, 그녀의 첫 풀렝스 앨범에 대한 의미를 남다르게 하고 있다. 특히 이들 게스트가 상징하는 실험적인 내용과 영적 소제를, 안나는 앨범 전체에 걸쳐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재현하고 있다. 길고 잔잔한 호흡에서 시작하는 사운드스케이프와 신비감을 품은 섬세한 멜로디는 사색적이고 영적인 영감을 품고 있으며, 명상적인 공간의 흐름을 다루는 앰비언트 계열의 일부 뮤지션들이 전하는 분위기와도 무척 닮았다. 실제로 이와 같은 분위기는 안나가 오랜 기간 수련한 명상을 토대로 한다고 전하고 있으며, 이는 각 곡의 제목에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표제적인 성격 또한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안나가 직접 감상을 위한 가이드로 제시한 해설을 보면, 앨범 전체의 흐름을 통해 명상과 사색의 과정을 안내하고 있기도 하다.

 

명상과 사색을 표방하는 기존 앰비언트 계열의 음악과 비교해도, 곡의 의도와 그 형식을 일치시키는 안정적인 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위해 안나가 활용하는 여러 음악적 요소 또한 그 흐름을 충실히 재현할 수 있는 섬세한 큐레이팅을 보여주고 있다. 호흡의 안정적인 흐름을 유도하고 심적 안정을 이끄는 사운드스케이프와, 사색의 공간을 개방하고 그 계기를 제공하는 멜로디 라인 등의 통상적인 작법을 활용하고 있지만, 안나의 작업에서는 개별 사운드에 대한 세심한 큐레이딩과 더불어, 그 활용 및 구성에서의 디테일이 눈에 띈다. 광활한 공간의 묘사를 통해 영적 사색의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적절한 거리에서 정확한 위상을 통해 각 요소의 기능적인 배열과 연관을 구체화하여 존재와 주변의 긴밀함을 부각하는 듯한 재현을 완성한다. 바이노럴 한 구성은 기존 안나의 감각적인 작법을 연상하게 하지만, 앨범의 트랙에서는 몰입의 섬세한 과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듯한 느낌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때문에 그녀의 곡은 명상과 사색을 유도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실제 그녀가 체험한 영적 이미지를 음악으로 묘사했다는 인상을 줄 만큼, 몰입적인 생생함과 더불어 음악적인 생동감도 함께 담고 있어 인상적이다.

 

이전 작업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곡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세부적인 구성과 플로우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보여준 섬세함을 통해 기존의 작법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평온을 향한 안정적인 몰입과 더불어, 그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환희와 즐거움은 물론, 그 과정에 이르는 잔잔한 역동까지 담아내고 있다. 특히 마지막 트랙에서는 기존 안나의 작법과 현재의 표현을 일치시킴으로써, 이번 앨범에서와 같은 사색의 흐름이 궁극에는 우리의 감각을 반짝이게 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하여, 인상적인 마무리를 완성한다.

 

 

2023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