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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Aindulmedir - Star Lore (Hypnagoga Press, 2023)

 

스웨덴 전자음악가 겸 작곡가 Pär Boström의 겨울 프로젝트 Aindulmedir의 앨범.

 

1982년생인 파르는 지금까지 다양한 활동명으로 자신의 음악을 기록해 왔지만, 내성적이면서도 우울함을 담은, 차갑고 어두운 분위기는 그의 사운드를 정의하는 시그니처와도 같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작한 Kammarheit는 파르의 본체와도 같은 성격을 지닌 것으로, 처음에는 도시의 밤에 들리는 소리의 아카이브에서 시작해 사운드 디자인과 전자 장치를 통해 구현한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음악적 탐구로 이어졌으며, Cyclic Law와 Cryo Chamber 레이블을 대표하는 다크 앰비언트 프로젝트의 하나로 성장하게 된다. 이로부터 파생한 Cities Last Broadcast는 2010년대 중반부터 새롭게 선보인 프로젝트로, 내성적인 삶을 살았던 어린 시절 테이프를 반복해 녹음하며 스스로 채득 한 릴 리코딩과 필드 리코딩을 활용해 몽환적 서사를 완성하고 있으며, Simon Heath의 Atrium Carceri 프로젝트와 일련의 협업을 담은 3부작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번 아인둘메디르 프로젝트는 파르의 지극히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랜 기간을 걸친 Teahouse Radio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장비의 열정을 쏟아야 했던 작업을 복잡성을 단순화하면서도, 그 음악적 내용을 쉽게 구현할 수 있는 선택에서 아인둘메디르의 성과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겨울 및 던전 신서사이저” 프로젝트로 정의하고 “독서광과 은둔자를 위한 겨울 음악”을 표방하며 자신이 집필 중인 “소설의 배경을 가로지르는 앰비언트”로 첫선을 보인 The Lunar Lexicon (2019)에 이어, 평소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종교적 세계관을 모티브로 완성한 The Winter Scriptures (2021)를 통해, 나름의 연속성을 지닌 겨울 시즌 프로젝트로 이어지게 된다. 파르의 여러 프로젝트는 각기 고유한 작업 방식과 음악이 담고자 하는 세계관을 통해 구체화하는데, 아인둘메디르의 경우 고전적인 신서사이저와 비교적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는 전자 악기들로 이루어진 단출한 사운드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번 앨범의 경우, 작업 방식의 단출함은 기존 아인둘메디르 프로젝트와 유사하지만, “천년의 겨울이 노래하고 천상의 잠이 엮어낸 전설”이라는 단 한 줄의 부연 설명을 통해, 그 내용에 있어서 만큼은 조금씩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구성의 명료함에도 공간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가득 채우는 밀도는 여전하고, 이를 가능하가 하는 내밀한 사운드의 운영 또한 유효하다. 로우의 베이스 루프에 따라 조용하게 반복을 이루는 하이의 벨, 고유한 텍스쳐를 간직하며 미드 레인지에서 섬세한 전개를 이어가는 패드 등과 같이, 균형적인 관계 속에서도 미묘한 대비를 이루는 듯한 사운드의 조합은 유기적이면서도 안정적인 하모니를 완성한다. 개별 소스 또한 진행 속에서 특별한 진폭을 보여주지 않아, 마치 고유한 상징성을 지닌 듯한 모습처럼 읽히기도 한다. 특별한 기교를 활용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개별 소스의 선택은 물론, 그 기능에 걸맞은 톤과 텍스쳐의 튜닝과, 이를 하나의 공간 속에서 균형 있게 배열을 이루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숨 막힐 듯한 섬세함을 포함한다. 각각의 소스가 공간 속에서 작용하는 방식 또한 개별 음악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며, 트랙에 따라 각기 다른 사운드 큐레이팅을 통해 그 기능과 역할 또한 다른 조합에서 응용되어, 단순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음악마다 저마다의 고유한 구체성을 지니게 된다.

 

구성은 명료하지만 사운드 사이의 유격이 없는 섬세한 배열을 통해, 곡 흐름에서의 조화와 균형은 물론, 자연스럽게 공간에 밀도가 채워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밀도감이 곡 자체의 분위기를 완성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상적이며, 그 안에 파르 특유의 정서적 분위기까지 담겨 있어, 명료한 표현 속에 음악가의 깊은 내면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공간이나 다이내믹을 폭넓게 활용하지는 않지만, 마치 일정한 규격의 캔버스 안에 자신만의 화풍으로 각각의 고유한 테마를 그려내는 듯한 일관된 분위기도 엿볼 수 있다. 다분히 상상 속 현실, 혹은 신화 속 실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듯한 각 곡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고유한 이미지처럼 드러나는 듯하며, 여기에 익숙한 일상적 우울함이 정서적 배경으로 깔리면서, 전체적인 음악적 톤이 일정한 무게감에 수렴하는 차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곡 자체의 명료함과는 대비를 이루는 정서적 다면성은 음악을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보게 만들며, 자연스러운 몰입을 유도하기도 한다.

 

파르는 고요한 듯하기에 더욱 어둡고, 차분하기에 더욱 긴장하게 되는 순간을 다루고 있다. 한 폭의 그림 속에 인간 내면의 다양한 감정과 정서의 흐름을 묘사하면서도, 섬세한 선과 균일한 채도를 통해 간결하게 담아낸 모습은 인상적이다. 이 모든 순간은 앨범의 커버 아트와도 절묘한 일체감을 보여준다. 정적이면서도 끊임없이 동요하는 내면의 정중동을 소리로 그려낸 듯한 앨범이다. 이번 앨범은 파르와 누나 Åsa Boström이 함께 설립한 레이블 겸 출판사 Hypnagoga Press를 통해 선보였다.

 

 

20230223

 

 

 

related with Pär Boström (as Cities Last Broadcast, Underwater Sleep Orches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