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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Ben Chatwin - Staccato Signals (Village Green, 2018)


영국의 전자음악가 겸 작곡가 벤 채트윈의 신보. 2000년대 말부터 활동을 시작해 몇 년 전까지 Talvihorros라는 이름으로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The Sleeper Awakes (2015)를 계기로 자신의 본명으로 앨범을 발표했고, 이번 앨범은 Heat & Entropy (2016)에 이은 작업으로 기록되고 있다. 기존의 작업과는 달리 채트윈은 자신의 본명으로 활동하면서 일렉트로닉과 어쿠스틱 사이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반영한 음악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두 가지 언어 사이의 관계 자체가 규범적이거나 일상적인 것이 아니어서 그 자체로 모호하고 불명확하며, 때문에 다면성을 지닌 긴장의 축을 동반하게 된다. 많은 뮤지션의 경우 자신의 음악적 견해에 따라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 그 긴장을 해소하거나 감추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면, 채트윈의 경우 균열과 대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불안과 긴장의 대비에 따른 볼드한 분위기의 연출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느낌은 의도라기보다는 결과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편에서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두 가지 언어의 대칭적 활용을 통해 드러나는 관계의 모호함은 다른 한편에서는 일렉트로닉과 어쿠스틱 사이의 다면적인 접점들을 개방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지점에서 채트윈만의 고유한 레토릭이 표출될 가능성을 보여주게 된다. 그의 음악이 단순히 일렉트로닉과 어쿠스틱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적 수사까지 포괄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밸런스보다는 텐션과 그 효과의 다면성에 주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앨범에서는 관악과 현악을 이용해 연출 가능한 다양한 표현을 시도하고 있는데, 악기 고유의 텍스처를 은폐하여 드론 효과와 같은 에소테릭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연출하는가 하면, 일렉트로닉과 어쿠스틱의 관계를 무효 혹은 역전시키는 실험적인 발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현대 작곡의 일면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분화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좋은 텍스트 중 하나다.


2018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