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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Bill Whitley - Absent Light: In Paradisum (Ravello, 2021)

미국 작곡가 Bill Whitley의 앨범. 빌의 작곡은 솔로에서부터 심포니에 이르는 폭넓은 편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실내악, 합창, 성악, 관현악 등은 물론 일렉트릭 기타와 피아노 듀오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적 표현을 포괄하고 있다. 컨트리나 재즈 등과 같은 미국식 현대 작곡의 유산 속에서 성장했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음악은 다분히 동양적인 명상을 연상하게 하는가 하면 때로는 중세 수도원의 성가를 떠올리며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몽환적 신비감을 담아내는 등, 상당히 다중적인 특징을 지니기도 한다. 이와 같은 빌의 복합적인 면모는 실제로 자연과 음악의 상호관계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된 것으로 통합적인 사고가 그의 음악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번 앨범은 Naxos에서 기획한 현대 작곡 컴필레이션 Mind & Machine: Organic & Electronic Works, Vol. 1 (2018)을 위해 작업하고 수록한 "Absent Light"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원곡은 일렉트릭 베이스 및 기타 Francesco Zago, 타악기/탐푸라/일렉트로닉 Giuseppe Olivini, 피아노 Elena Talarico, 색소폰 Federico De Zottis, 트롬본 Fedele Stucchi, 비브라폰 Stefano Grasso 등이 연주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번 앨범에서 해당 곡은 "In Paradisum (Instrumental Version)"이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다. 앨범은 또한 원곡의 구성을 분할하여 새롭게 편곡한 "In Paradisum"과 "In Paradisum (Francesco Zago Version)"을 더해 총 세 곡이 실려 있다. 복합한 구조를 지닌 원곡이지만 이를 매우 러프하게 곡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도입, 피아노-비브라폰-기타 등을 이용해 복합적인 아르페지오를 만들어내는 과정, 그 위에 트롬본과 색소폰이 라인을 덧붙이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전개, 그리고 통합적인 점진적 결말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번 앨범에 새롭게 편곡하여 수록한 곡은 이 부분 중 일부 혹은 핵심을 취해 새롭게 재구성하는데, 그 과정에서 남성 소프라노의 라인을 추가함으로써 원곡의 이미지를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In Paradisum"이 원곡의 도입을 간략하게 하는 대신 전체 구성에 소프라노를 더한 느낌이라면, 원곡의 공동 제작자이자 믹싱 및 마스터링까지 담당했던 프란세스코의 편곡 버전은 전곡을 축약하고 섬세한 일렉트로닉의 배음을 활용하여 분위기를 반전시켜 목소리가 부각될 수 있는 공간과 배경을 연출한 인상을 준다. 단순한 요소로 복합적인 구성의 곡을 완성하는 대신 이를 편안한 표현으로 우리에게 들려주는 작곡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앨범이다.

 

2021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