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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Blak - Between Darkness And Light (Elusive Sound, 2017)


스페인 출신 Eloi Casellas가 주축이 된 신생 3인조 포스트-록 그룹 블락의 데뷔 앨범. 2015년 온라인 상에서의 프로젝트 작업으로 처음 시작된 이들의 활동은 Elusive Sound 레이블의 제안으로 마침내 엄청난 결실을 맞이하게 된다. 3인조라는 가장 기본적인 구성으로 이들이 만들어낸 작업의 결과물은 의외로 신선하고 놀랍다. 흔히들 포스트-록 그룹에게서 기대하는 고유한 사운드의 텍스쳐나 톤을 구성하는 방식은 이미 높은 완성 수준에 도달해 있다. 긴밀한 내적 응집력은 물론 밀도감이 느껴지는 깊이 있는 사운드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다. 규모에 어울리는 사운드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지만 자신들 스스로 과도함의 경계에서 물러설 줄 아는 클레버한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때문에 이들이 펼치고 있는 사운드의 스케이프는 상상력이 가득한 음악적 진행과 맞물려 매우 구체적인 묘사의 힘을 얻게 된다. 어쩌면 이 대목이 이 그룹을 장르 내 다른 밴드들과 다른 줄에 세울 수 있는 차별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40여분이 넘어가는 앨범의 러닝타임이지만 수록된 곡은 5개에 불과하며 개별 곡들은 7~10분에 이르는 긴 연주 시간으로 되어 있다. 곡의 제목 또한 자신들이 묘사하고자 하는 상황의 구체성을 축약하고 바로 뒤이어 이를 개념화하는 하나의 핵심 단어로 요약하고 있다. 곡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표제적 특징은 자신들이 묘사하고자 하는 곡의 구체적 서술을 쫒아가는 데 있어 청자에게는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느린 속도의 변화를 긴 호흡으로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시적인 감동과 긴장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곡이 끝나갈 무렵 그 시작점을 다시 한번 복기해 보면 마치 하나의 자연스러운 내러티브가 완성된다. 일상의 작은 변화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셈이다. 이들이 곡을 구성함에 있어 이와 같은 아이디어의 출처가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앨범 전체를 통해 이러한 방식들이 관철되고 있다는 점에서 강한 의지의 개입은 분명해 보인다. 음악 그 자체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낸 놀라운 신인이다.


2017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