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음악가 Morgan Fox와 Patrick Hills의 듀오 프로젝트 Blank Gloss의 앨범.
서로 다른 음악 분야에서 활동 중이던 모건과 패트릭은 펑크와 실험적인 음악 작업을 통해 처음 만났고, 이후 2020년 패트릭이 근무하는 스튜디오에 모여 둘만의 음악을 녹음하게 된다. 즉흥을 기반으로 하는 세션을 중심으로 완성한 앨범은 January (2020)라는 이름으로 발매했고, 앰비언트와 미니멀한 접근을 더욱 강조한 두 번째 앨범 Melt (2021)를 연이어 선보이게 된다.
첫 번째 앨범은 즉흥적인 세션을 중심으로, 사운드나 효과의 활용에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며 모건과 패트릭 둘 사이의 공통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이었던 만큼, 하나의 정형화된 형식적 틀보다는 의지가 반영된 자연스러운 흐름에 의존한다는 인상이 강했던 반면, 두 번째 작업에서는 BG의 음악적 관점을 보다 명확히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주변적인 효과들을 최소화하고, 자신들이 연주하는 기타와 피아노를 중심으로 일렉트로닉을 활용한 패드나 드론과 같은 앰비언스를 접목해, 보다 명료한 형식의 진화를 이루게 된다. 구성은 간결해졌고, 표현은 명료해졌으며, BG만의 분위기는 더욱 선명해졌다.
앰비언트의 경향적 특징을 지향하면서 연주 악기와 일렉트로닉을 접목한 미니멀한 구성의 음악적 특징은 이번 작업에서도 유효하다. 전작에서 보여준 명료한 형식을 더욱 엄숙하고 중후한 방식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BG만의 고유한 성격을 구체화하고 있다. 즉흥적인 모티브에 의해 잔잔한 라인을 이어가면서 상호 간에 자율적인 합의를 완성해 가는 방식은 기존과 유사하지만, 이전에 비해 그 과정이나 방식이 나름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곡 자체는 여전히 특별한 테마를 구성하지 않으며, 즉흥성에 의존한 미니멀한 멜로디나 라인을 중심으로 플로우가 흘러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각각의 연주와 사운드가 서로를 보완하는 방식은 능동적 직관성이 아닌, 일련의 구조화된 연관을 조심스럽게 확장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사운드 어셈블리를 이용해 음악을 구성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할 만큼, 즉흥적 모티브와 연관을 이루는 음향과 요소들이 보여주는 상호 긴밀성은 이번 작업에서 큰 눈길을 끌기도 한다.
이러한 연주와 사운드 및 효과 사이의 긴말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견인하는 힘은 느슨하고 때로는 방관적이라는 인상을 줄 만큼 관조적이라는 점은 매력적이다. 그 과정은 음악적이면서도 자연스러움을 함께 품고 있어, 플로우 속에서는 어떤 인위적인 개입이 없이, 소리 그 자체가 스스로 흐르는 듯한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짧은 시간에 이룬 음악적 진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BG만의 고유한 자연스러운 플로우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운드를 활용하는 방식 대신, 간소한 기본 악기들을 통해 간결한 구성을 지속하고 있으며, 그 톤 또한 앨범 전체에 걸쳐 비교적 균일함을 유지하고 있다. 빈 공간을 다른 음향이나 효과로 채우기보다는, 개별 악기 각 사운드 고유의 긴 리버브만을 활용하여, 긴 여음과 사운드 테일로 여백을 투명하고 차갑게 채색하는 듯한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공간과 여백을 활용하면서도 모든 사운드는 쉽게 부서질 것만 같은 여린 모습을 보여준다. 조심스럽고 여리지만 조금은 투박하게 다듬어진 라우한 느낌의 톤 사운드는 스산한 느낌의 공간에 흔적을 남기며, 개별 곡은 물론 앨범 전체의 분위기를 완성한다. 이는 마치 아무런 가공 없이 진솔하게 정서를 반영하는 듯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여, 때로는 내밀한 불안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사운드와 구성 모든 면에서 BG의 색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하고 있는 앨범이다.
2023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