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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Craig Padilla & Marvin Allen - Weathering the Storm (Spotted Peccary, 2023)

 

미국 전자음악가 겸 작곡가 Craig Padilla와 기타리스트 Marvin Allen의 협업 앨범.

 

크레이그는 199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한 앰비언트 계열의 전자음악가이며 영화 및 드라마 관련 작업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배우 경력을 비롯해 영상 제작자로 활동하는 뮤지션이다. 마빈은 재즈, 블루스, 록, 일렉트로닉 등 폭넓은 장르를 소화하는 연주자로, 여러 뮤지션들을 위한 세션은 물론,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혼합한 다면적인 연주를 담은 솔로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둘의 음악적 협업은 200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번 앨범과 관련한 비교적 최근의 성과로는 Toward the Horizon (2019)과 Strange Gravity (2021)를 꼽을 수 있다.

 

앰비언트 계열의 전자음악과 다양한 록 기타 사운드를 결합해 완성한 이들 작업은, 크레이그와 마빈 각자의 시그니처 사운드를 포함하면서도, 두 장르의 접점에서 표현 가능한 복합적인 요소까지 포괄하며, 둘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담은 몽환적이고 드라마틱한 정경을 펼쳐 보이고 있다. 우산 든 소녀가 등장하는 이들 앨범 표지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번 녹음 또한 두 전작에 이은 연장으로 볼 수 있으며, 실제 이번 작업이 포함하고 있는 일부 트랙의 경우 두 앨범 발매 전후에 다른 컴필레이션을 통해 소개된 점으로 미루어, 비슷한 시기에 완성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번 앨범만의 고유한 특징이 부각되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비교적 단순한 오버 더빙이나 레이어링을 제외하면 현장 녹음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듯한 연주의 분위기는 물론, 일렉트로닉의 작법에서 드러나는 고전적인 접근 방식 등은, 이번 앨범이 지닌 나름의 독특한 개성이 아닐까 싶다. 고전적인 사운드에 바탕을 둔 신서사이저의 시퀀싱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베이스 루프나 드럼 믹스 등은 곡의 성격에 따라 익숙한 전통적인 록의 진행에 따르는 교과서적인 운영을 하기도 하여, 다분히 레트로 한 감성에 기반을 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동시에 크레이그가 선보이는 일렉트로닉의 스타일은 베를린 스쿨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시퀀싱의 구성에서부터, 사운드스케이프를 활용한 아메리칸 특유의 스페이스 앰비언트 특유의 공간적 표현은 물론, 때로는 신스 웨이브에 드림 팝의 캐주얼 한 감각을 더한 일렉트로닉스에 이르기까지 무척 풍부한 표현을 다루기도 한다. 부분적으로는 현대적인 펄스를 활용한 몇 가지 이펙트와 피드백을 활용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듈러 장치를 이용한 전통적인 아날로그 신서사이저의 라이너 한 반응을 더욱 부각하고 있으며, 스튜디오적인 기교보다는 음악적 직관에 따라 연주가 진행되었다는 인상이 강하다.

 

음악은 이와 같은 신서사이저로 구성한 사운드 필드에 기타 라인이 내러티브를 더하는 방식의 단순한 구조처럼 보이지만, 전자 음향의 공간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독립된 연주를 완성한다고 느끼게 할 만큼 복합적인 요소의 구성적 조합을 이루고 있으며, 동시에 멜로디의 기능과 역할을 충실에 대한 충실한 재연은 물론, 사운드의 구성이나 진행에서의 극적 느낌을 전달하기 위한 편곡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전통적인 어법이나 접근과 관련한 나름의 규범적인 사고들을 엿볼 수 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전통적 접근의 활용이 둘의 협업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요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기에 기타는 스틸 어쿠스틱은 물론 일렉트릭의 다양한 톤과 사운드로 대응하며, 둘의 그 조합을 통해 다양한 양식의 표현을 확장하는 모습을 완성한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클라우트록은 물론이고, 플로우에 내러티브를 더해 극적 요소를 부각한 곡에서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느낌이 살아나기도 하고, 앰비언트적인 공간에서 에어리 한 톤 사운드로 튜닝한 기타의 라인이 전개될 때는 포스트-록의 분위기까지, 두 가지 영역의 접점에서 연출할 수 있는 다양한 표현을 유연하게 활용하여, 자신들의 음악적인 내용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긴 시간 연주를 전개하는 과정에는 작곡의 의도가 담긴 치밀한 구성의 단락들도 존재하지만, 그 연결과 흐름에서는 즉흥적인 요소와 특징들도 상당 부분 개입하기도 하여, 이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무척 역동적이다. 신서사이저의 노브를 통해 각 사운드의 필터나 프리퀀시를 조절하며 기타의 연주에 즉흥적인 대응을 보여주는 모습이나, 전자 음향으로 완성한 공간에 대한 해석이나 개입에서 기타에게 부여된 자율성을 확장한 표현 등은, 마치 라이브 연주에서 재현 가능한 인터랙티브 한 반응까지 담아낸 듯하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올드 스쿨의 작법에 의존해 연출한 공간적 표현이기에, 이 안에서 만들어내는 음악은 어린 시절 열광했던 많은 연주를 떠올리게 하는 아련함을 느끼게 하여,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을 경험하게 하는 작업이다. 고전적인 사운드의 힘이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으며, 앨범 커버 속 우산 든 소녀가 앞으로 어떤 여정을 이어갈지 궁금해지는 앨범이다.

 

 

2023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