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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Enzo Carniel & Filippo Vignato as Silent Room - Aria (Menace, 2021)

프랑스 피아니스트 Enzo Carniel와 이탈리아 트롬본 연주자 Filippo Vignato의 듀오 프로젝트 Silent Room의 앨범. 평소 엔조와 필리포가 들려줬던 음색이나 활동을 생각해보면 '조용한 방'이라는 듀오의 이름을 쉽게 납득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이 그려낼 분위기에 대해서도 짐작 가능한데, 앨범은 그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이 이미 밝혔듯이 듀오 프로젝트의 핵심은 관계에 있으며 이는 공간의 자율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둘의 음악적 관계는 2014년 Albert Mangelsdorff의 헌정 공연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다양한 협연의 기회를 통해 공통의 문법과 표현을 완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덕분에 앨범에서 드러나는 자율적 공간에 대한 합의는 자연스러운 인터플레이에 의해 완성되고 있으며, 다양한 음악적 언어 속에서도 특유의 유연한 표현들이 공감 가능한 텍스트처럼 쉽게 전달되는 장점이 있다. 또한 음악 용어이며 동시에 이탈리아어로 공기를 의미하는 '아리아'라는 단어를 앨범 타이틀로 사용함으로써 '조용한 방' 안에서 이루어지는 음악과 공간의 관계를 우회적 은유로 표현한 점은 이번 앨범의 특징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분히 "침묵 다음으로 아름다운 소리"라는 Manfred Eicher의 격언을 떠올리게 하며, 소리를 전달하는 단순한 매질이 아닌 음악으로 기능하는 공기(혹은 공간)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두 악기 사이에 존재하는 물리적 거리를 지우려는 의도적인 노력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두 악기가 차지하는 스테레오의 공간은 좌우가 거리를 두고 분리된 방식이 아니라 공통분모의 합에서 이루어지는 조화와 균형에 방점을 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 중첩되는 음역대에서의 사운드는 전혀 과장되지 않고 오히려 포근한 온기를 발산하는 듯하다. 연주의 분위기나 곡의 진행에 따라 미세하게 전후의 위상이 변하는 경우는 있지만, 좌우 두 악기 사이에 이루는 벨런스는 균일한 모습을 보여준다. 소리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을 주는 앨범이다.

 

2021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