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Erlend Apneseth - Nova (Hubro, 2022)

 

노르웨이 전통 현악기 하르당에르 피들 연주자 Erlend Apneseth의 솔로 앨범.

 

에르렌드는 2010년대 초에 데뷔한 젊은 뮤지션이지만, 노르웨이 전통 악기인 하르당에르 피들을 이용한 현대적인 음악적 접근을 선보이며, 현지에서의 큰 호평은 물론 많은 나라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연주자이기도 하다. 하르당에르 피들은 바이올린과 유사한 모습이지만 8개의 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4개의 현을 이용해 연주하는 대신 나머지 4개의 하부현은 상부현의 영향으로 공명을 일으켜 발성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상부현의 경우 대부분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튜닝을 하는 반면 하부현의 경우 지역이나 연주자에 따라 다양한 조율을 하고 있어, 뮤지션마다 자신의 시그니처 사운드의 연출이 가능한 것으로 전해진다.

 

에르렌드는 하르당에르 피들이 지닌 전통적인 독주 악기의 특징을 활용하여 민속은 물론, 재즈, 클래식 등의 여러 주변 장르와의 음악적 접점을 사고하는 뮤지션이다. 특히 노르웨이 아코디언 연주자 Frode Haltli와 함께 집단 작업한 일련의 작품들 속에서 전통 악기와 현대 악기의 융합은 물론 복합적인 장르적 표현을 통합하는 과감한 음악적 실험을 선보이며 큰 관심을 끌기도 한다. 또한 최근에는 자신의 트리오 활동을 통해 그 접점의 확장을 시도하는 인상적인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전자 음향과의 적극적인 공간 공유를 모색하는 그의 새로운 접근은 에르렌드를 일렉트로-어쿠스틱 계열의 주요 뮤지션 중 한 명으로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그는 영화, 연극, 무용 등을 위한 활발한 기고는 물론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 작업에도 기여하기도 한다.

 

이번 앨범은 에르렌드의 솔로 연주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그의 다양한 음악 활동의 일부를 이루는 프로젝트 중 하나로 전해지고 있다. 하르당에르 피들이 지닌 전통 독주 악기로서의 성격을 부각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그가 선보였던 여러 유형의 음악적 특징을 솔로의 형식으로 개념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상징성을 지닌 앨범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일반적인 현악기가 지닌 다양한 표현은 물론 하르당에르 피들 특유의 부드러운 피치의 연속이나 자연스러운 조옮김 등을 솔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어, 이색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음악적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그의 연주는 민속적인 테마에만 국한하지 않고, 악기 특유의 다양한 주법을 활용하여 임프로바이징의 모티브를 확장하는 창의적인 표현을 선보이기도 하며, 작곡과 즉흥을 통합하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공간의 반영이다. 녹음이 이루어진 장소는 Emanuel Vigeland의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그의 영묘를 위해 건축한 Tomba Emmanuelle 뮤지움으로, 프레스코 비타가 그려진 800평방 미터의 거대한 통 아치형 실내로 이루어진 공간이라고 한다. 창문이 없고 어두운 조명이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삶의 에로티시즘을 묘사한 작품들이 전시된 실내는, 뮤지션 개인의 사적 표현을 개방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포함할 수 있을 듯싶다. 특히 공간 자체가 연출하는 자연스러운 리버브는 현악기의 고유한 톤과 텍스쳐에 다양한 중첩을 발생하고 있어, 사운드 그 자체만으로도 앨범은 독특한 몰입과 폐쇄적 긴장을 제공한다. 레가토로 이어지는 연주에서 서스테인과 긴 중첩을 이루는 사운드는 물론, 발로 바닥을 내리치는 짧고 강한 울림의 타악적 임팩트 등은, 솔로를 더욱 풍성하게 구성하는 협연과도 같은 인상을 준다. 악기의 특성상 중고역대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데도 자연스러운 리버브가 연출하는 밀도는 청각적으로 크게 자극적이지 않으며, 공간 표현이 뛰어난 장비가 아니더라도 현장의 입체감을 경험하기에는 그 어떠한 아쉬움도 없어, 청자를 배려한 섬세한 흔적도 엿볼 수 있다.

 

에를렌드의 다양한 음악적 표현을 집약하고 있는 복합적인 음악적 양식과 연주 스타일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으며, 솔로임에도 마치 공간과 협연을 이루는 듯한 묘한 경험을 제공하는 인상적인 앨범이다.

 

 

2022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