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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Espen Eriksen Trio with Andy Sheppard - Perfectly Unhappy (Rune Grammofon, 2018)


노르웨이 출신 피아니스트 에스펜 에릭센이 Lars Tormod Jenset (b), Andreas Bye (ds) 등이 함께하고 있는 트리오 EET와 영국의 색소폰 연주자 앤디 쉐퍼드의 컬래버레이션 앨범. EET와 쉐퍼드가 함께 이름을 올리고 있는 타이틀을 보며 의외지만 꽤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예상을 하게 된다. 소소한 일상적 대화를 차분하게 이어가는 듯한 EET의 기존 모습을 떠올리면 꾸밈과 과장 없는 사색적 공간을 만드는 쉐퍼드와 예상외의 좋은 케미스트리를 기대하게 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가장 손쉬운 접근이 가능한 공통의 요소에 기반을 두고, 확장보다는 집중을 택한 전략적 현명함이 이번 협업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2년이라는 기간 동안 함께 연주할 기회가 있었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투어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이 이번 앨범에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에릭센은 작곡 과정부터 EET와 쉐퍼드의 협업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오리지널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쿼텟 형식의 새로운 구성을 이루기보다는 기존 트리오에 색소폰이 새로운 레이어가 더해질 수 있도록 멜로디 라인의 공간을 개방하고, 쉐퍼드는 그 안에서 트리오의 리듬과 톤에 맞춰 발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음악적 균형은 이미 전재된 합의처럼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일체감에서도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쉐퍼드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쿼텟이나 Bley-Swallow 트리오에서 선보였던 공간감이 희석되는 대신 라인의 명료함이 강조되는 측면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또한 스스로 의도했고 원했던 방식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어 전혀 트집 잡을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이와 같은 조합의 협업 덕분에 EET는 물론 쉐퍼드 자신 또한 내면의 다양한 감정의 흐름을 서정적인 표현과 섬세한 언어적 수사를 통해 드러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EET나 쉐퍼드에게는 비교적 일상적 언어에 근접한 대중적 표현일지라도 이미 그들에게 내재한 음악적 양식의 일부임은 분명하다. '완벽한 불행'이라는 역설이 전하는 소소한 행복 같은 음악이다.

2018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