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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Eydís Evensen - The Light (XXIM, 2023)

 

아이슬란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Eydís Evensen의 앨범.

 

레이블에서 제공하는 에이디스에 대한 소개 글에는, 이제 더 이상 그녀의 과거 경력과 관련한, 마케팅을 위한 구구절절한 스토리 텔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대중도 그녀를 온전한 음악가로 바라보고 있기에, 레이블 역시 에이디스의 음악적 경력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고, 음악에 담긴 작가의 정서와 내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 대목은 당연하면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에이디스의 데뷔 앨범 Bylur (2021)은, 그녀가 지나온 개인적 삶이 음악을 위해 준비한 삶이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에이디스의 음악은 자신의 삶과 일상에 견고한 뿌리를 두고 있으며, 섬세한 정서적 시선을 반영한 표현은 직관적이고 진솔하다는 인상을 줄 만큼, 잔잔하면서도 강한 호소력과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일상적 감정의 표현이 음악적 언어로 전달되는 듯한 음악은, 듣는 이로 하여금 음악가의 내면에 쉽게 도달할 수 있게 하며, 그녀의 표현이 지닌 섬세함과 진솔함은, 쉽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힘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은 에이디스 음악이 지닌 형식적 확장 가능성은 Bylur Reworks (2021)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고, 그녀 자신의 고유한 표현의 음악적 확장 가능성은 미니 앨범 Frost (2022)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앨범은 지난 EP에서 단편적으로 보여줬던 에이디스의 음악적 표현의 확장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듯하다. 피아노 솔로로 정서적 반영을 담은 작업은 물론, Showstrings 현악 사중주와의 협연을 통해 그 표현을 보다 섬세하게 완성하는가 하면, 여기에 클라리넷, 더블베이스, 트럼펫 등의 레이어를 더하며 확대된 편성 속에서 의미 전달을 구체화하고 세밀하게 완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Hörður Áskelsson가 지휘하는 Schola Cantorum Reykjavicensis의 합창은 물론, 에이디스가 자신의 반주에 맞춰 직접 노래를 부르는 트랙 또한, 이전 작업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곡들이다. 자신이 직접 쓴 시는 합창의 기초가 되었고, “얼어붙은 아름다운 빛"을 묘사한 후 힘겨운 희망으로 끝을 맺으며 "아름다운 빛은 여전히 살아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빛’이라는 이번 앨범 타이틀의 의미를 담아내기도 한다.

 

앨범은 ‘빛’이라는 상징으로 표현되는 희망을 소제로 하고 있지만, 에이디스는 이번 음악들을 마주하기까지 지난 시간의 트라우마와 슬픔에 직면한 자신과 마주해야 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한 개인의 사적 불행 및 감정과 이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그려내는 것뿐만 아니라, 팬데믹, 자연재해, 전쟁 등과 같이 한 개인으로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주변 현실을 마주하며 겪게 되는 마음속 흔들림과 희망을 향한 염원까지 담아내고 있다. 합창과 같은 형식을 포함해 기존 사중주에 관악이나 새로운 레이어를 더한 표현들은, 어쩌면 그녀가 지금까지 한 번도 이야기해 보지 못했던 희망에 관한 내용을 자신의 음악적 언어 속에서 구체화하기 위한 접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때문에 새로운 시도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까지의 음악들에 비추어 전혀 이질적이지 않은 일련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기존의 형식에 확장된 기악적 레이어들이 더해진 곡들 또한 에이디스의 정서와 감정을 더욱 섬세하게 담아내기 위한 과정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슬픔을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희망을 묘사하는 것이 조금은 더 혐겨울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여, 에이디스가 이번 작업 과정에서 직면해야 했던 힘겨움을, 본의 아니게 엿본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Valgeir Sigurðsson의 프로듀싱은 에이디스의 고유한 음악적 언어에서 새로운 표현을 이끌어내며, 그녀의 음악이 ‘빛’을 발 할 수 있도록 섬세한 조율을 완성하고 있다. 에이디스가 이번 앨범을 통해 선보인 것은 음악적 표현의 확장 가능성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담아낼 수 있는 묘사의 구체성도 포함하고 있으며, 일부 트랙에서 전하는 내러티브적인 진행 또한 흥미롭게 귀 기울여 볼 만하다. 감정의 이면에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섬세하고 풍부한 음악적 표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슬픔과 좌절을 갈아 넣어 ‘빛’으로 완성한 앨범이다.

 

 

202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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