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Gianluigi Trovesi & Stefano Montanari - Stravaganze Consonanti (ECM, 2023)

 

이탈리아 색소폰/클라리넷 연주자 Gianluigi Trovesi와 바로크 바이올린 연주자 겸 지휘자 Stefano Montanari의 앨범.

 

유럽을 대표하는 색소폰/클라리넷 임프로바이저인 지안루이지는 1944년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인근 마을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Bergamo Conservatory에서 하모니와 대위법에 대한 학습과 더불어 전문 연주자로서의 재능을 키우게 된다. 그가 학창 시절이던 1960년대 유럽에 소개된 미국의 프리 재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그 영향을 받아들여 유럽 재즈 씬의 주요한 플레이어로 주목받게 된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재즈라는 한정적인 공간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지안루이지는 늘 재즈와 주변 장르와의 관계에 대한 깊은 지적 탐구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어린 시절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의 민속 음악과 학창 시절 함께 했던 클래식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1990년대 초 ECM에 합류한 이후에도 지안루이지는 즉흥적인 모티브를 활용한 재즈를 비롯해, 자신의 일상과 연관이 있는 주변 장르의 음악을 수용하고 응용하며, 자신만의 다양한 성과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앨범은 기존 작업 속에서 종종 선보였던 클래식과의 관계를 다룬 작업을 담고 있다. 지안루이지는 1980-90년대에 함께했던 옥텟 시절에도 이미 바로크와 현대 클래식을 재즈의 맥락 속에서 수용하는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고, 오페라 프로젝트로 명명한 Profumo Di Violetta (2008)에서는 몬테베르디에서 시작해 마스카니와 푸치니에 이르는 고전을 6인조의 편성 속에서 새롭게 재현한 작업을 완성하기도 했다.

 

이번 작업의 경우 바로크 스페셜리스트인 스테파노와의 협업을 통해 완성한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기존과는 다른 작법을 응용해 지안루이지의 음악적 표현을 확장하고 있다. Henry Purcell, Giovanni Maria Trabaci, Guillaume Dufay, Giovanni Battista Buonamente, Andrea Falconieri 등 이탈리아를 비롯한 프랑스와 영국의 르네상스 및 바로크의 고전을 탐구하며, 단순한 시대의 흐름이 아닌 음악적 맥락 속에서 그 순서를 배열하고, 그 중간에 지안루이지의 음악적 사고를 반영한 원곡을 배치하여, 일종의 총론과도 같은 전개를 완성하고 있다. 지안루이지와 스테파노를 포함한 13명의 뮤지션이 완성한 앙상블은 고전적인 양식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적인 뉘앙스를 담은 독특한 음악적 재현을 보여주고 있으며, 새로운 작곡 또한 앨범의 전체 흐름에 비교적 유연하게 수렴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크 스페셜리스트로 불리고 있지만 현대 오케스트라에서도 인상적인 작업을 선보였던 스테파노의 역량이 이번 작업에서 충분한 매력을 발휘했음을 직감할 수 있다.

 

편곡을 통해 다양한 시대의 원곡을 앨범의 맥락에서 규범화하고, 그 안에서도 솔로의 공간을 개방하는 나름의 유연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체적으로는 고전적인 양식의 앙상블이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편곡과 편성을 통해 자율적 표현이 내면화할 수 있는 공간을 이미 전재하고 있다. 이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언어를 구조화하여 서로가 기능적으로 작용하도록 완성하는 방식과도 차별을 이루고 있어, 클래식과 관련한 과거 Uri Caine의 놀라운 일련의 성과와도 근본적인 접근 자체가 다르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지안루이지는 Fulvio Maras를 참여시켜 일부 곡의 작곡은 물론 퍼커션과 일렉트로닉의 연주를 활용해 고전적인 구조에 현대적인 색채를 더하여, 보다 다면적인 특성을 지닌 고풍의 이미지를 연출하기도 하며, 규범적인 공간의 구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여러 악기의 라인 위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프레이즈를 펼치기도 한다. 르네상스 및 바로크와 현대를 넘나들고, 그 중간에 있는 모든 양식을 생략하더라도 이질감 없는 매끄러운 하나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완성한다. 어쩌면 이와 같은 유연성을 전재로 하는, 연속적인 일련의 다면적 흐름을 통일된 언어로 통합해서 표현하는 과정 자체가,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장엄한 임프로바이징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번 작업은 클래식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그 구성이나 내용에서는 오히려 재즈에 더 가까운 통찰을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평소 지안루이지의 자유로운 즉흥 안에서도 실내악적 엄밀함을 느낄 수 있었던 점을 기억한다면, 어쩌면 이번 작업은 새로운 형식과 양식을 통해 확장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의 이전 음악이 재즈라는 표현을 통해 고전적 울림을 탐구했다면, 이번 작업은 그 반대로 고전적 울림을 통해 재즈를 확장한 인상적인 성과를 보여준다.

 

 

2023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