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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Hildur Guðnadóttir - Chernobyl (Deutsche Grammophon, 2019)

 

아이슬란드 작곡가 힐두르 구드나도티르의 신보. 개인적으로 올해 상반기에 봤던 몇 편 안 되는 드라마 중 최고작을 꼽으라면 단연 HBO의 Chernobyl (2019) 5부작이다. 힐두르의 이 앨범은 드라마에 사용된 음악들을 수록하고 있다. 드라마는 보는 내내 불편하다. 불행한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하고, 켜켜이 쌓여가는 불안은 원전처럼 절대 폭발하지 않으며, 극 중 인물들 지친 내면은 고스란히 시청자의 마음에 응축된다. 때문에 인류 최악의 재앙과 거짓에 저항해 몸을 내던져 얻은 작은 성과가 눈물겹고, 등장인물들의 무심한 대사 하나가 마음을 울린다. 드라마 속 힐두르의 음악은 가장 고전적인 용법으로 작용한다. 인간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묘사하는가 하면 눈으로 볼 수 없는 방사능의 실존을 소리로 그려내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구체적 실재가 아닌 대상을 다루는 음악은 그에 걸맞은 차갑고 때로는 불편한 앰비언스를 구성한다. 드라마와 독립된 음악 그 자체는 단순한 묘사적 특징으로 일관한다. 물론 개별 곡은 드라마 속 인과관계의 연계로 이어진 내러티브의 구조 속에서 작용하지만, 음악 그 자체만으로는 그 어떠한 부연이나 시퀀스를 구성하지 않으며 오직 묘사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낸다. 또한 드라마와 무관하게 곡의 제목을 염두에 두고 음악을 들으면 강한 표제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들은 기존 힐두르의 음악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음을 기억한다면, 이번 작업 역시 그녀의 음악적 일관성 속에서 완성되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힐두르는 세부의 디테일보다는 핵심 개요에 집중해 굵은 라인을 그려가며 텍스쳐를 완성한다. 때문에 감상 뒤에는 멜로디에 대한 기억보다는 이미지와 감정의 흔적이 더 크게 남는다. 드라마를 기억한다면 그 어느 것보다 강한 인상을 남긴 앨범이다.

2019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