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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ILUITEQ - Reflections from the Road (n5MD, 2023)

 

이탈리아 전자음악가 Sergio Calzoni와 Andrea Bellucci의 프로젝트 듀오 ILUITEQ의 앨범

 

세르지오와 안드레아는 1990년대부터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전자음악이라는 장르에 몸담으며 나름의 작업과 활동을 이어온 베테랑 뮤지션들이다. 대중적인 취향의 선곡에서부터 실험적인 장르에 이르는 둘 사이의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일렉트로닉의 경향적 특징 속에서 앰비언트로 포괄할 수 있는 협업 양식에 주목하여, 지금까지 각자가 축적한 경험을 반영한 일루이텍 프로젝트를 출범한다.

 

2017년 결성 이후, 첫 결과로 발매한 Soundtracks For Winter Departures (2018)에서는 두 사람의 음악적 공통 인식 대한 확인을 넘어, 협업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시너지를 담아내며, 서로에 대한 강한 흡착력을 보여줬고, 이후 연이어 선보인 The Loss Of Wilderness (2021)와 The Light Inside, The Dark Outside (2022)를 통해 보다 견고해진 음악적 유대와 더불어, 일루이텍만의 고유한 특징을 선명하게 부각한다. 섬세하게 조율한 사운드 디자인에 명료한 멜로디의 플로우를 구조화하면서, 샘플링을 포함한 다양한 합성 기법들을 활용해 자신들만의 유니크 한 사운드 공간을 연출한다. 음악적인 감각에 기술적인 재능까지 더해진 이들의 작업에는, 기타나 피아노와 같은 연주 악기의 레이어와 필드 리코딩 등이 더해지며 풍부한 음향적 팔레트를 완성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성공적인 경험은 일루이텍의 협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했고, 세르지오와 안드레아의 음악적 유대는 더욱 견고한 방향을 향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루이텍의 네 번째 정규 앨범 역시, 이번 작업의 고유한 문제의식과, 이를 반영한 음향적 특징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번 작업은 Cormac McCarthy의 소설 The Road (2006)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2009년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은 전지구적인 재난으로 인류와 문명이 사라진 포스트-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인간성을 상실한 채 동물적 감각으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묘사하며, 방어와 자살이라는 단 두 가지의 선택을 위한 2개의 총알이 장전된 권총을 들고 서로를 의지하며 생존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연히 이와 같은 소설 속 메타포를 인용해 음악을 만든 것은, 최근 우리의 삶을 덮진 감염병 사태 이후의, 여전히 모호하고 불편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지난 몇 년간의 고립감을 품고 조심스럽게 돌아온 일상에는 여전히 고립의 흔적이 뒤 따라다니며, 이미 우리의 일상 속 일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돌아가고 있는 그곳은 과거와는 다른 현실일 수밖에 없다. 많은 음악가들이 이와 같은 새로운 일상을 묘사하기 시작했고, 일루이텍 또한 자신들의 관점에서 현재에 대한 불안과 조심스러운 희망을 그려내고 있다.

 

곡의 순서는 마치 소설의 이야기 전개에 따라 이어지는 듯한 배열과 제목을 지니고 있어, 앨범 전체는 일련의 내러티브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번 작업에서의 가장 큰 특징은, 지금까지 다양하게 활용했던 주변적인 표현을 많은 부분에서 배제하고 일렉트릭과 일렉트로닉에 의지한 집약적 묘사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주 악기의 어쿠스틱 사운드는 물론, 주변적 묘사의 디테일을 위해 활용한 필드 리코딩까지 배제한, 순수 전자 음향을 통해 포스트-아포칼립스적인 소설 속 근미래와 우리의 현재를 동일시하는 듯하다. 일련의 긴장을 이루는 비트 시퀀싱이나 베이스 루프는 물론, 모호한 현실을 묘사하는 신서사이저 등은 다분히 이전 세대의 고전적인 특징들에 기반을 두는 듯하며, 개별 소스들 또한 익숙한 캐릭터를 지닌 음향을 조합하고 있다. 플로우 또한 기존의 작업에 비해 다분히 오디너리 하나는 일상을 줄 만큼 직선적인데, 극적인 전환이나 의외의 레이어링을 배제한 명료함은, 개별 곡이 지닌 고유한 테마에 의해 강하게 이끌리며 힘을 더해가는 모습이라, 트랙마다 담긴 주제의 선명성은 물론, 제목과 연관된 표제적 성격까지 강조하고 있다. 익숙한 요소들을 낯설지 않은 방식으로 엮어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일루이텍 특유의 섬세한 묘사적 표현이 더해지고 있어, 음악은 물론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큰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앨범 발매 한 달여 전에 공개한 음악 영상에서는 전세계적인 인류의 위험이 전쟁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어, 현실에서의 공포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재난 영화나 소설이 그러하듯, 단 1분 및 단 한 줄의 희망을 보고 읽기 위해, 1시간 넘는 시간과 수백 페이지의 불가항력적 절망을 견뎌야 하지만, 일루이텍은 그 과정조차 온전한 현실적 순간들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지금까지의 작업 중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한층 더 깊어진 미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앨범이다.

 

 

202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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