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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Ill Considered - 3 (self-released, 2018)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4인조 임프로바이징 그룹 일 콘시더레드의 신보. 이번 앨범은 Ill Considered (2017)와 Live At The Crypt (2017)에 이은 세 번째 음반으로 이전 작업에서 보여줬던 집단적 합의의 넘치는 에너지를 다시 한번 재현하고 있다. Idris Rahman (sax), Leon Brichard (b), Emre Ramazanoglu (ds), Satin Singh (perc) 등으로 이루어진 그룹은 최소한의 합의된 테마를 중심으로 자율적인 임프로바이징을 전개한다. 하지만 균일한 톤을 따라 전개되는 연주는 표현주의적인 난해함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도회적이면서도 쓸쓸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형상을 취하고 있어 묘한 익숙함이 느껴진다. 임프로바이징이라는 재즈의 기본적 표현을 기초로 하고 있지만 그 표출 형식은 다양하다. 원시 부족의 집단적 무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사이키델릭한 측면이 있는가 하면 흑백 시대의 누아르 물을 보는 듯한 순간도 존재한다. 네 개의 독립 공간에 최소한의 공통분모만을 남겨 놓고 마치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자율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려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들의 연주를 구성하지만 물리적 합이 이루는 터프한 조화는 그 어떠한 케미스트리보다 폭발적인 힘을 발산한다. 느슨한 공간 구성이지만 밀도 있는 내적 유대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이들의 연주는 의외로 스트레이트 하다. 마치 하나의 공통 목표를 향해 각자의 방식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때로는 긴장되고 가끔은 격한 불협도 발생하지만, 진행 과정에서는 단 한순간도 균일한 톤이 흐트러지거나 공간의 볼륨이 급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쩌면 격한 물리적 반응 속에서도 일관된 흐름을 따라가는 이들의 연주 태도가 듣는 이에게 지속적인 호기심을 이끌어 내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와 같은 진행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베이스 연주자 레온이 큰 몫을 하고 있다. 볼드한 톤으로 중심과 균형점을 잡아주며 다른 주자들의 공간을 끊임없이 잡아당기는 중력처럼 작용한다. 재즈의 기본 언어 그 자체로 표현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좋은 예로 '간주'할 수 있다.


2018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