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Jupi/ter - Islands, Pt. 3 (Ambientologist, 2023)

 

Jupi/ter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영국 앰비언트 뮤지션 Alex Glynn의 앨범.

 

2010년대 초부터 활동을 시작한 알렉스는 다양한 악기 연주를 바탕으로 앰비언트적인 서사를 완성하는 작곡가이기도 하다. 개인 작업 외에도 영화와 광고를 비롯한 영상 작업은 물론 게임 음악에도 참여하였으며, 현재 몇 편의 개봉 예정 작품에 작곡으로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음악은 기악 연주 그 자체와 이를 가공한 사운드 디자인의 요소를 포함해 신서사이저의 패치는 물론, 필드 리코딩, 사운드스케이프 등의 다양한 소스들을 활용한 복합성을 특징으로 한다. 때로는 시퀀싱이나 아르폐지에이터와 같은 장치적인 특징을 더해 구성을 다변화하기도 하며, 모든 요소들은 다양한 양식의 상호 유기성을 바탕으로 해당 작업의 고유한 메시지를 선명하게 부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의 상호 유기성은 앨범이 담고자 하는 음악적 메시지에 따라 개별적 흐름이나 절연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와 같은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 이번 3부작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Islands, Pt. 1 (2020)가 아닐까 싶다. 짧은 분량의 미니 앨범 형식의 해당 작업은 상호 작용의 부재와도 같은 고립적 특징을 강조하고, 각 요소들의 자율적 움직임을 보여줌으로써, ‘섬’이라는 대상과 그 안에서의 일상이 지닌 광활함을 묘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진 두 번째 EP인 Islands, Pt. 2 (2021)는 섬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을 사운드로 상징화하고, 그들의 유동적인 움직임을 포착하며, 이를 하나의 공간 안에서 다루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내며, 상호 간의 유기성을 담아낸다. 서로 유사한 사운드 소스를 활용하면서도 이들이 맺고 있는 연관성을 다양하게 구성하며, 앨범이 담고자 하는 주제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방식은, 새로운 관계와 주제를 지닌 이번 앨범에서도 이어진다.

 

이전 작업들이 섬의 존재와 그 안에서의 다양한 요소들의 연관성을 묘사했다면, 이번 녹음은 그 존재의 이유와 의미에 대한, 보다 철학적인 사고를 담고 있는 듯하다. 때문에 이전 작업에 비해 각각의 사운드가 지닌 연관의 방식은 무척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배경과 전경을 비롯해 흐름의 중심을 이루는 각 요소들이 이루는 관계는 무척 다면적이다. 필드리코딩을 비롯해 배경 속에 숨어 있는 섬세한 텍스쳐들은 단순히 주변적인 효과로 기능하지 않고 곡의 밀도를 중첩하는 독특한 애트모스피어를 연출하기도 하고, 전경과 그 중심을 이루는 다양한 라인들 또한 저마다의 고유한 캐릭터를 간직하며 복합적인 구성의 흐름을 완성하고 있다. 즉흥적인 모티브에 따라 부유하는 기타를 비롯해 라인을 이루는 몇 가지 소스들이 이와 같은 전경의 주요한 요소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그 위상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때로는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에 따라 물리적인 부피감은 물론 그 공간의 위치를 자연스럽게 옮겨가며, 부드럽게 유영하는 듯한 자연스러운 흐름을 연출하기도 한다. 주요 모티브를 이루는 간결한 멜로디와 사운드스케이프를 비롯해 주변적인 다양한 효과들이 하나의 총체성을 이루는 구성은 복합적이고, 진행 속에서 의외의 요소들이 개입하며 그 과정을 더욱 다양하게 이끌어가기도 하는데, 그 흐름은 무척 정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소리의 상징성과 음악 그 자체의 고유한 작법을 통해 완성하고 전달하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와 같은 작법은 알렉스의 음악적 개성과 독창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방식이 서술적인 나열이 아닌, 시적 표현으로 가득하다는 점에서, 음악가의 심미적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앨범은 다소 암울한 전망을 다루는 듯하면서도, 미적 표현이 지닌 힘을 간직하고 있어, 절망과는 다른 소멸의 메시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2023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