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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Keith Lowe - The Other Half of Silence (Loosegroove, 2023)

 

미국 베이스 연주자 Keith Lowe의 솔로 앨범.

 

키스의 이름은 비록 생소할지라도, 어쩌면 우리는 그의 연주를 한 번 이상은 접했을지도 모른다. 1980년대에 데뷔하여 수많은 유명 뮤지션들의 세션 및 객원 멤버로 활동했는데, Wayne Horvitz, Shawn Smith, Laura Veirs, Stone Gossard, Fiona Apple, Bill Frisell 등과 같이, 서로 다른 다양한 장르에 거쳐 오랜 기간 연주 활동을 펼쳐온 뮤지션이다. 밴드 Brad와도 오랜 기간 깊은 협력 관계를 유지하여,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고 Shawn Smith의 부재 속에서도 그룹의 재결성 작업에 참여하고 있음은 물론, 이번 앨범 또한 Regan Hagar와 Stone Gossard가 설립한 Loosegroove에서 발매하게 된다.

 

록, 팝, 컨츄리, 재즈 등에 이르는 다양한 세션 활동과 오랜 음악 경력에도 불구하고, 키스의 개인 작업은 매우 드물고, 이 또한 다른 뮤지션들과의 공동 작업 형식을 취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이름이 들어간 타이틀의 경우, 앞에서 언급한 대중 취향의 장르가 아닌 앰비언트 혹은 일렉트로닉과 같은 마이너 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Glen Velez, David Lanz, Gary Stroutsos 등과 공동으로 발매한 Future Primitive (2010)를 비롯해 Chris Gestrin과의 듀엣 작업을 담고 있는 The Thoughtfulness of Distance (2015)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키스의 첫 솔로 타이틀이기도 한 이번 앨범은, 지금까지 협업 형식으로 선보인 개인 작업에서 드러난,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더욱 명확하게 부각하고 있다. 어쿠스틱 베이스가 주를 이루는 연주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앰비언트의 시각을 제시하는 동시에 모던 클래시컬의 음악적 함의도 포함하고 있어, 이전 개인 작업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번 앨범의 일부 트랙은 Peter Gabriel과 Brian Eno의 오랜 음악 협력자로도 유명한 건반 연주자 겸 기타리스트 Peter Chilvers, 그리고 Roger Eno의 딸인 보컬 Cicely Eno의 참여로 완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그 음악적 특징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번 앨범의 배경에 대해 키스는 지난 몇 년간의 “고립과 음악적 상호 작용의 부족”을 언급하며, 이와 관련한 여러 시대적 정서를 반영했음을 밝히고 있다. 곡들은 복합적인 여러 겹의 층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레이어는 저마다의 고유한 연주와 진행은 물론 나름의 특징적인 질감을 포함하고 있어, 어쿠스틱 베이스라는 단일 악기에 주로 의지해 완성한 연주임에도, 전체적으로 전해지는 그 느낌은 무척 폴리포닉 하며 동시에 다면적인 정서적 깊이를 품고 있다. 긴 레가토로 만들어내는 여러 플로우의 레이어링을 통해 완성한 여유로운 웨이브는 몽환적인 서사를 그려내는가 하면, 기악적 특징을 반영한 현악의 다양한 텍스쳐를 중첩해서 만든 드론의 풍부한 배음은 깊고 넓은 공간을 연출하기도 한다. 어쿠스틱 사운드를 전면에 배치하면서도 일렉트로닉과의 균형점을 조율하며, 현악의 라인들이 안정적인 앙상블을 이룰 수 있도록 섬세하게 설계한 구성은, 오늘날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주요 성과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으며, 때로는 키스만의 창의적 응집이 돋보이는 대목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침묵의 이면’이라는 타이틀이 암시하듯, 앨범 전체에 흐르는 고유한 분위기다. 하나의 악기에서 파생하는 다양한 질감의 사운드와 그 조합은 마치 침묵을 향해 수렴해 가는 듯한 내적 응집을 지니고 있다. 흔히 말하는 밀도가 단순히 공간에서만 포집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진행 속에서도 포착되어, 플로우가 여유로울수록 미묘한 정서적 각성이 발현하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개별 곡의 제목을 통해 암시하는 표제적 특징과 묘사적 표현을 반영하면서도, 복합적인 정서적 분위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균일한 흐름 속에 담아낸 인상적인 앨범이다. 긴 시간 좀처럼 쉽게 자신의 소리를 내지 않았던 키스의 음악적 내면과 취향을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작업이며, 지금까지의 오랜 개인적 ‘침묵’ 속에 감춰진 그의 또 다른 ‘이면’을 기대하게 하는 앨범이다.

 

 

2023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