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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Kjetil Husebø - Years of Ambiguity (NXN, 2023)

 

노르웨이 전자음악가 겸 작곡가 Kjetil Husebø의 앨범.

 

1975년생인 셰틸은 전문 클래식 교육을 받은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과 프로듀싱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대한 통합적 사고를 제시하는 뮤지션이다. 그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재즈 연주자인 동시에 일렉트로닉, 민속,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적 언어를 포괄하는 폭넓은 음악적 인식을 보여주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그는 여러 장르의 접점에서 자신의 표현을 음악적 실현하고 있으며, 다면적인 특징을 지닌 그의 작업 또한 추상과 구체의 대면점을 형성하는 듯한 복합적 이중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셰틸의 복합적 양면은 자신의 음악적 본류에 해당하는 피아니스트로서의 모습에서도 극적으로 드러나는데, 임프로바이징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솔로를 담고 있는 Piano Transformed (2017)나 Live at Nasjonal Jazzscene (2020)만 보더라도 그랜드와 일렉트로닉의 인터랙티브 한 상호 작용을 다루는 창의적 표현을 담고 있다. 자신의 솔로를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닌 두 가지 사운드로 분할하면서도, 이 둘이 마치 솔로의 왼손과 오른손의 전통적 기능을 확장하고 변형을 이룬 것처럼 표현하여, 궁극에는 하나의 음악적 세계관 속에 통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앨범은 셰틸의 복합적 다면성과 통합적인 음악적 세계관을 보다 확장된 형식으로 표현한 작업을 담아내고 있다. 여전히 솔로라는 작업 방식이 기본을 이루고 있지만, 피아노를 중심으로 진행했던 이전의 작업과 달리 신서사이저, 샘플러, 프로그래밍 등을 활용하고 있으며, 일부 트랙에서는 오랜 동료인 기타 Eivind Aarset와 트럼펫 Arve Henriksen과의 협연을 포함하기도 한다. 에이빈과 아르베 역시 재즈 임프로바이저이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음악을 주변 장르, 특히 일렉트로닉을 이용해 새롭게 통합하려는 노력을 지속하는 뮤지션들이라, 이번 협업은 단순히 셰틸의 공간에 연주를 더한 피처링 방식이 아닌, 마치 자신들의 음악적 인식을 함께 완성하는 듯한 긴밀한 협업을 보여주고 있다.

 

협연을 포함하는 3개의 트랙을 제외한 나머지는 신서사이저와 일렉트로닉 등을 중심으로 구성한 작업이지만, 대부분은 연주적 특성은 물론 어쿠스틱의 텍스쳐를 전자 음향의 공간 속에서 함께 재현하는 듯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통악기의 기악적 표현을 공간 안에 녹여내는가 하면, 고전적인 현악 사운드와 주법을 직접 인용하기도 하고, 멜로디 라인을 이루는 사운드에 민속적 특징을 지는 목관의 텍스쳐를 지닌 소스를 활용하는 등, 다분히 일렉트로-어쿠스틱의 특징을 부각한다. 특히 드론이나 사운드스케이프 또한 익숙한 관악 혹은 현악의 소스를 조합해 완성하여, 마치 오케스트라와도 같은 배음을 연출하기도 한다. 일렉트로닉의 공간에 어쿠스틱의 특징을 지닌 사운드의 요소를 조합하는 방식의 다양성만큼이나, 곡의 진행 또한 여러 특징을 지닌 구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서로 유사한 사운드의 특성을 지닌 레이어를 진행 속에서 서서히 점층해 가며 밀도를 더해가는 방식, 단순한 멜로디를 부각하며 이루어지는 플로우를 복합적인 구성을 지닌 양식으로 진화하는 과정은 물론, 고전적인 신서사이저의 사운드로 펼친 일련의 라인을 전개하며 내러티브를 완성하는 구성 등, 각각의 곡은 나름의 고유한 진행을 보여준다. 이러한 다양한 방식의 진행 속에서 미니멀과 맥시멀의 상층적인 교차를 이루고 있어, 그 과정 또한 복합성을 지니는 것이 특징이며, 이는 마치 셰틸이 장르를 포함한 악기의 다양한 요소를 다차원적인 방식으로 조합하는 모습과도 닮았다는 인상을 준다.

 

음악적 다면성을 이루는 다양한 특징들이 서로 대질과 조화를 반복하면서도, 이번 앨범의 주요 특징을 이루는 일렉트로닉을 바탕으로 하는 거대한 사운드 필드 안에 재즈, 민속, 클래식 등의 요소들 융합한 독특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조금은 확장적인 표현을 보여주고 있지만, 지금까지 셰틸이 다룬 음악적 맥락에 걸맞은 충실한 재현을 다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보는 것 같은, 다양한 장르적 표현까지 자연스럽게 녹여낸 전자음악의 교향시를 담은 앨범이다.

 

 

2023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