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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Lennart Ginman - 360 (nyt.nu, 2023)

 

덴마크-핀란드 출신 더블 베이시스트이자 작곡가 겸 프로듀서 Lennart Ginman의 앨범.

 

1960년생인 레나트는 지금까지 주로 재즈 씬에 몸담으며, 자신의 그룹과 프로젝트는 물론 여러 유명 뮤지션들의 작업에 참여하며, 음악적 입지를 넓혀온 뮤지션이다. 최근 들어 그는 일렉트로닉에 대한 관심을 확장하는 모습을 조금씩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번 작업은 본격적으로 새로운 장르적 도전을 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전자 음악과 관련한 과감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 놀랍고 신선하다. 녹음에는 이전 작업에서도 함께 호흡을 맞췄던 페달 스틸 기타 연주자 Maggie Björklund이 함께하고 있으며, DJ Steen Rock이 드럼머신을 비롯해 효과 및 스크레치를 담당하고 있어, 이번 앨범의 독특한 특징과 더불어, 그 방향성을 짐작하게 한다.

 

인적 구성이 지닌 독특한 경계성은 그 자체로 재즈와 일렉트로닉의 접점을 보여주는 듯하며, 이는 이번 앨범에서 레나트 자신의 위치 혹은 입장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일렉트로닉이 재즈와 연관을 맺은 수많은 공식이 존재하지만, 이번 앨범에서 보여주는 경계와 접점은 무척 과감하여, 본격적인 전자 음악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만큼의 대담함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한 인용이나 활용이 아닌, 일렉트로닉의 다양한 언어와 표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그 방식 또한 다양한 경향적 흐름과도 일치하는 세련되고, 그 어느 때보다 순수한 모습을 따르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를 위해 레나트는 더블 베이스는 물론 샘플러와 여러 전자 장치들을 직접 활용하고 있으며, 여기에 SR의 세련된 감각이 더해지며, 본격적인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다.

 

레나트는 전체적으로는 샘플링의 연주에 기반한 작법을 활용하고 있지만, 모듈레이션의 특징을 이용해 다양한 변화를 흐름에 반영하며, 다양한 유형적 특징을 재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드럼머신과의 공간 속에서는 감각적인 모듈레이션의 일면을 과감하게 표출하는가 하면, 정교하게 샘플링한 사운드로 이루어진 간결한 시퀀싱을 이용해 감성적인 내용을 다루는 등, 그 내용에서는 무척 다채롭고,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는 여지가 풍부하다. 독특한 점은 이와 같은 기본적인 공간 구성이 연주 악기의 개입을 부차화하거나 기능적으로 상대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매기의 스틸 페탈 연주가 단순한 장식적인 요소로 활용되지 않고, 고유한 톤과 사운드는 물론 그 라인이, 일렉트로닉의 공간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기능적으로도 온전한 일체감을 완성하고 있다. 이는 레나트 자신의 베이스 연주에도 당연히 해당하며, 때로는 연주적 특성을 부각하여, 전체 공간의 구성에서 일렉트로닉과의 유연한 유기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렉트로닉의 상대적인 우위를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재즈와의 연관이 교조적인 강박에서 자유로우며, 나름의 방식으로 유기성을 지속적으로 확인한다는 점에서, 레나트의 풍부한 음악적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하나의 단어로 이루어진 각 곡의 타이틀은 간결한 만큼 음악 그 자체를 통해 메시지의 상징성을 강하게 부각하며, 그만큼 다양한 스타일을 활용하고 있지만, 앨범 전체의 균일한 분위기를 지속하는 대목 또한 인상적이다. 특히 이 안에 담긴 디스토피아적인 우울감은 아름다우면서도 우아하기까지 하다.

 

 

2023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