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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London Brew - London Brew (Concord, 2023)

 

런던 재즈 뮤지션들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밴드 London Brew의 앨범.

 

이번 앨범은 그룹 이름과 타이틀, 커버 아트 등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Miles Davis의 앨범 Bitches Brew (1970)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담고 있다. 2020년 앨범 발매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타리스트 겸 프로듀서 Martin Terefe와 총괄 프로듀서 Bruce Lampcov는 영국을 포함 유럽 전역 주요 도시에서 공연을 기획했지만, 감염병 사태로 인해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고, 결국 2020년 12월 런던의 더 처치 스튜디오에서 12명의 뮤지션들을 모아 3일간의 세션 녹음을 진행하게 된다. 녹음에는 색소폰/플루트 Nubya Garcia, 색소폰/목관악기 Shabaka Hutchings, 드럼/퍼커션 Tom Skinner, 전자음향 Benji B, 튜바 Theon Cross, 바이올린/일렉트로닉 Raven Bush, 베이스 Tom Herbert, 신서사이저 Nikolaj Torp Larsen, 피아노/신서사이저 Nick Ramm, 드럼/퍼커션 Dan See, 기타 Dave Okumu 등,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뮤지션들이 참여한다.

 

Bitches Brew는 기존의 전통적 양식 속에서 진화를 이어오던 재즈를, 당대 대중음악의 다양한 장르와의 관계 속에서, 가장 혁신적인 방식으로 고유의 언어와 표현을 전위시킨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록할만하다. 다양한 전자 악기의 도입으로 사운드를 혁신했고, 고전적인 진행 방식을 해체하여 새로운 서사 구조를 제안했으며, 전통적 제한을 벗어나 주변 장르와의 관계 속에서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도전적인 가능성을 실현한 작품이다. 특히 사회적 상징성을 지닌 사운드와 표현을 적극 수용해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한 마일즈의 위대한 음악적 발언이기도 하다. 그 영향은 재즈에만 한정하지 않았고 록, 펑크, 전자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변화를 자극했으며, 실험적인 구성의 아방가르드나 즉흥적 모티브를 정교한 구성으로 확장한 프로그래시브에서도 마일즈 앨범의 흔적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번 헌정 앨범은 거장의 음악을 단순히 커버하는 대신, 오늘날 런던 재즈 뮤지션들이 그 영감을 어떻게 기억하고 활용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장 중요한 악기인 트럼펫이 빠진 것에 대해서는, 헌정 앨범에 거장의 존재를 대신할 다른 뮤지션을 찾는 것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오히려 가장 큰 상징성을 지닌 요소를 거둬냄으로써 고전이 지닌 음악적 핵심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할 수 있었다는 느낌도 갖는다. 대신 Nubya Garcia는 자신의 관악기에 페달과 이펙트 스위치를 연결해 음원의 디스토션과 변형을 활용한 사운드의 궤적을 완성했고, 이는 Shabaka Hutchings와의 인터랙티브 한 연관을 통해 보다 확장적인 관악 프레이즈의 진행을 이어가며, 이번 앨범 특유의 프런트 라인을 구성하게 된다. 고전적인 신서사이저는 물론 전자 음향과 일렉트로닉은 고전이 지닌 독특한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베이스와 드럼 역시 무게감 있는 라인과 창의적인 비트 분할을 통해 공간적 특성을 다면화하는 등, 전체적인 편성과 사운드의 운영에서는 오리지널이 지닌 특징에 비교적 충실하면서도 현대적 양식에 맞춰 재현한 모습을 보여준다.

 

연주는 동일한 방식으로의 재현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법한 수준으로, 라이브적인 특성을 강하게 부각하고 있다. 테마와 흐름의 중심을 이루는 모드의 확정 이후 개별 공간에서의 자율성은 무한적으로 확장하여 능동적이고 직관적인 각자의 개입을 통해 진행을 이어가는 접근은 고전에서 보여준 방식과 동일하다. 때로는 하나의 주요한 라인이 연주를 이끄는가 하면, 인터랙티브 한 연관 속에서 즉흥적 프레이즈를 전개하며 일련의 구조를 완성하기도 하고, 매시브 한 임프로바이징의 중첩을 통해 공간의 다이내믹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등, 전체적인 흐름의 디테일은 하나의 단어로 특정하기 힘든 거대한 창의의 집합을 이루고 있다. 사전에 약속한 느슨한 구성을 제외하면, 진행 과정에서 12명의 연주자가 이루는 합의의 방식 또한 무척 역동적이고 가변적이며, 그만큼 집합적인 사운드의 조직 역시 상황에 따른 다양성을 포함하고 있다. 때문에 긴 시간 이어지는 곡의 흐름은 마치 다양한 유형의 긴장을 구조화하는 방식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러한 음악적 텐션의 변화를 통해 전체 연주의 진행을 포착하는 과정도 흥미로운 감상법이기도 하다. 특히 대부분의 곡이 단일 코드 혹은 모달 어프로치에 기반하고 있고, 매시브 한 세션을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에, 흐름의 완급이나 밀도를 조율하는 지휘자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 작업에서는 이러한 기능을 상대화했다는 인상을 받기도 할 만큼, 몰입을 유도하는 방식은 그리 입체적이지 않다. 이는 아쉬움이라기보다는 고전의 영향력을 해석하는 밴드 특유의 방식일 수도 있을 듯싶다.

 

이번 앨범은 마일즈의 유산을 해석하고 재현하는 방식의 일부를 다루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밴드 나름의 유의미한 관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일회적인 3일간의 세션만으로 이와 같은 녹음을 완성했다는 점도 놀랍고, 만약 지속적인 집단적 활동의 결과물이었다면 보다 완성도 있는 형식으로 발매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50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마일즈의 유산이 여전히 현재성을 지니는 이유에 대한 충분히 납득할만한 실천적 성과를 담고 있음은 분명하다.

 

 

2023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