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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Mari Samuelsen - LYS (Deutsche Grammophon, 2022)

노르웨이 바이올린 연주자 Mari Samuelsen의 앨범. 마리의 연주는 섬세한 기교와 풍부한 상상력은 물론 시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해석을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고전에 대한 해석과 더불어 현대 작곡에 대한 그녀의 기여는 눈부시기까지 한데, 마리의 연주는 작곡의 의도를 섬세하게 정류하고 온전하게 증폭해 청자에게 음악적 감동과 일상의 영감을 동시에 전달하는 훌륭한 앰프라는 느낌을 들게 한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이 노르웨이어로 ‘빛'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EL34 진공관의 불빛이었고, 실제로 이 안에 담긴 마리의 연주는 그 음색과 너무나도 닮았다는 생각하게 된다. 생명에 대한 은유적 상징이기도 한 ‘빛'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앨범에는 Hildegard von Bingen과 같은 중세 시대를 비롯해 Meredi, Hannah Peel, Anna Meredith, Laura Massoto 등의 현대는 물론 Hildur Guðnadóttir, Hania Rani, Margaret Hermant 등과 같은 레이블의 동료를 포함한 13명의 여성 작곡가들의 곡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다분히 여성성과 계몽주의를 강조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아무튼 중세 성가에서부터 다양한 양식의 현대 작곡은 물론 Beyoncé의 팝 넘버까지 포괄하고 있어, 시대는 물론 여러 장르적 표현이 마리와 Jonathan Stockhammer 지휘의 Scoring Berlin의 연주에 통합되어 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작곡가들의 기존 곡을 편곡하고 연주한 것은 물론, 이번 앨범을 위해 새롭게 제출된 작곡도 포함하고 있으며, 진행 순서는 서사에 의한 합목적성을 염두에 둔 듯한 일련의 내러티브적인 플로우를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앨범에서 단연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것을 통합하는 마리의 능력이 아닐까 싶은데, 이는 마치 지금까지 개별 작업을 서로 연관 지어 감상하면서 직감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던 그녀의 음악적 총체성을 하나의 작품집에 담아낸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마리의 통합적인 능력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은 Margaret Hermant의 “Lightwell”이 Hildegard von Bingen의 “O vis eternitatis”를 거쳐 Beyoncé의 “Halo”로 이어지는 과정이 아닐까 싶은데, 바이올린의 리드를 강조한 현악적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편곡에는 각기 다른 음악적 양식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음에도, 그 흐름에는 그 어떠한 정서적인 이질감이 개입하지 않는 온전한 일체감을 경험하게 한다. 이와 같은 자연스러운 내러티브의 플로우는 Hildur Guðnadóttir의 첼로가 리드하는 “Bær”를 바이올린의 공간으로 옮기면서 원곡에 담긴 정서적인 긴장과 밀도를 설득력 있게 재현하고, Hannah Peel의 “Reverie”에 감싸인 일렉트로닉의 텍스쳐를 섬세하게 재구성하며, Hania Rani이 제안한 “La Luce”를 통해 정적인 흐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인상적으로 드러난다. 이처럼 개별 곡이 지닌 특징을 편곡과 연주를 통해 충분히 반영하면서도, 마리 특유의 표현으로 통합하고 이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완성하는 음악적 내러티브 또한 완벽하다. ‘빛’이 지닌 상징적인 의미와, 그 현실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음악으로 담아낸 듯한 인상적인 앨범이다.

 

2022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