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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Masabumi Kikuchi - Hanamichi: The Final Studio Recording (Red Hook, 2021)

2015년 세상을 떠난 일본 피아니스트 Masabumi Kikuchi의 유작. 일본 가부키에서 객석을 가로질러 무대로 연결된 하나미치(花道)는 배우들이 드나드는 통로로 이용되는데, 퇴장하는 등장인물들에게 꽃을 전달하기도 해서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러한 타이틀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앨범은 'The Final Studio Recording'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고인의 최종 리코딩이라는 의미 외에도 이 앨범은 평소 키쿠치의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의외성이 담겨있다. 실험적인 공간 속에서 기존 언어의 해체적 표현에 집중했던 지난날과 달리 이번 녹음에서는 추상과 구체의 경계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젊은 날 확신에 가득 찬 과감한 타건 대신 음과 음 사이에 긴 침묵을 채우는가 하면, 무조의 공간이 주는 해체의 영역을 재구성에 이르지 못한 채 여백을 남기며 끝맺음을 하기도 한다. 이번 녹음이 피아니스트가 작고하기 약 1년 반 전인 2013년 말에 이루어진 점을 기억한다면, 이미 그의 몸과 마음이 많이 쇠약해져 세션 중간에 긴 수면을 취하면서 힘겹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이 앨범에 기록된 소리 하나하나는 처연하게 다가온다. 그래도 상상의 공간을 개방해 자신의 음악적 신념을 드러내는 "Improvisation" 같은 연주에서는 이전에 키쿠치가 보여줬던 과감함과 날카로움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앨범보다 1년여 앞서 녹음된 ECM 솔로 Black Orpheus (2016)와 비교해도 미묘한 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젊은 시절에 비해 확실히 관조적인 태도로 음을 이어가고 잔향만 남은 침묵 속에서도 끊임없이 내면을 드러내려는 강한 의지는 두 앨범 모두에서 생생하기 전해진다. ECM 솔로와 마찬가지로 이 앨범의 마지막 역시 젊은 시절 자신의 딸을 위해 작곡한 "Little Abi"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잔향 속에도 깃든 애잔함은 이번 녹음 전체에 대한 인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놀라움과 음악적 기쁨을 경험하게 해 준 Tethered Moon 트리오의 피아니스트가 무대를 마치고 '하나미치'로 퇴장하는 길 위에 꽃 하나 놓아 본다.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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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sabumi Kikuchi Trio – Sunrise (ECM,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