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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Minihi - Stasis Loops (Velveteen, 2023)

 

타악기 연주자 Louise Anna Duggan과 Zands Duggan으로 이루어진 영국 부부 듀오 Minihi의 앨범.

 

클래식을 전공한 두 명의 퍼커션 스페셜리스트로 이루어진 듀엣이라고 한다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실험적이거나 혹은 거친 스타일의 음악과 달리, 미니히가 전하는 곡은 대중 친화적이면서, 오늘날의 트렌드와도 상당한 연관을 지닌 감각적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 둘은 런던의 Guildhall School of Music 출신으로, London Contemporary Orchestra 소속 연주자로 활동 중이며, 함께 혹은 각자 여러 극장과 극단의 작업에 참여하는가 하면, 영화나 드라마 음악에도 작곡 및 연주자로 기여하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것으로 전해진다.

 

루이즈와 잰즈가 미니히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Deutsche Grammophon에서 월간 발매하는 컴필레이션 시리즈 중 Project XII 2020를 통해 “Tokaido”를 발표하면서부터인데, 해당 발매 작업이 클래식과 컨템퍼러리의 경계에 대한 새로운 사고와 혁신을 모색하기 위한 레이블의 기획 중 하나임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 듀엣이 현재의 음악적 지형 속에서 차지하는 창의적 위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Recaptures (2021)로 데뷔한 미니히는 다양한 퍼커션 연주를 활용해 현대의 감각적인 취향을 반영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포괄하는 독특한 사운드의 그루브를 보여준다.

 

이번 앨범은 미니히의 작업이 더욱 진화한 양식을 향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질감과 부피를 지닌 여러 타악기와 신서사이저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전작에 비해, 이번 앨범은 보다 확장된 레이어와 사운드를 활용해 자신들의 음악적 세계관을 확장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건반, 보컬, 현악기 등의 사운드가 새로운 역할을 한다는 것을 넘어, 어쩌면 본격적으로 고전과 현대의 접점 외에도, 전통적인 민속과 기계적인 문명을 비롯해,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의 경계조차 하나의 그릇에 담아 희석하려는 듯한 노력을 보여준다는 인상을 들게 한다. 현대적인 모티브를 다루고 있지만 아스텍 파이프, 덜시머, 하모니움 등과 같은 민속 혹은 고전적인 악기의 레이어를 적극 활용하는가 하면, 영화적인 내러티브를 떠올리게 하는 극적인 진행을 통해 현대 문명에 대한 나름의 음악적 의견을 표명한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무엇보다 미니히의 모든 표현은 무척 감각적이다. 현대적인 애트모스 사운드는 아니지만 바이노럴 한 공간의 입체감을 스테레오 공간에서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으며, 각 악기가 각자 고유의 위치에서 담당하는 기능적 역할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러 종류의 타악기들만 하더라도, 드럼 세트와 같은 집합적 표현이 아닌, 개별 악가가 지닌 고유한 질감과 부피가 합주를 통해 공간을 채우는 집단적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그 외의 다양한 사운드 또한 연주 속에서 수행하는 나름의 고유한 기능과 역할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렉트로닉 또한 반복적인 시퀀싱을 넘어 텍스쳐의 디테일을 보완하는 역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며, 음악의 감각적 형상을 구체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질량으로 통합되어 전달되는 요인으로는 개별 곡 자체의 고유한 영화적인 내러티브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각각의 사운드는 곡의 진행에 따라 여러 패턴의 조합을 이루며, 그 양식의 변화에 따라 반전과 고조를 이어가며 흐름을 다이내믹하게 완성한다.

 

원시 주술적 표현에서부터 댄스 플로어의 감각적 반복은 물론, 록 비트를 연상하게 하는 강렬함과 현대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의 웅장함까지, 여러 스타일을 포괄하면서도 미니히의 독창적인 표현은 그 어느 순간에도 굴절되지 않는 자신만의 창의적인 선명함을 보여준다. 극저음과 공간 표현이 잘 되는 시스템에서 감상한다면 이들이 전하는 음악적 쾌감은 극대화될 것이며, 폭넓은 음역과 다양한 사운드의 조합으로 연출하는 음향적 효과만으로도 큰 만족을 경험할 수 있는 앨범이다.

 

 

2023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