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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Nat Bartsch - Hope Renewed (Amica, 2023)

 

호주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Nat Bartsch의 앨범.

 

냇은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공부했고 대학에서 음악 공연 학위를 취득한 이후 재즈와 현대 음악 분야에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유럽 스타일의 재즈 트리오에 영향을 받아 2000년대 말 자신의 트리오를 결성했고, 2010년대 중반부터 솔로 활동에 집중한다. 현재 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이미 다수의 작품을 여러 앙상블에 제공해 왔으며,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주하며 지금까지 꾸준한 앨범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데뷔작 Hometime (2017)을 비롯해 최근의 Hope (2021)에 이르는 여러 작품에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Luke Howard의 프로듀싱과 참여로 완성했을 만큼, 호주 내에서 그녀의 위상이 남다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냇의 음악은 재즈와 클래식을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두 장르 사이의 경계를 다루지 않는다는 점은 독특하다. 두 가지 양식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지만, 연주로 재현하는 방식에서는 그 구분이 비교적 명확하며, 해당 장르 고유의 음악적 언어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때문에 각각의 앨범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장르적 성격을 비교적 명확히 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영향을 일정 부분 확인할 수 있는 미묘한 지점들을 간직하는 것이 매력이기도 하다. 이는 ‘자장가’ 시리즈로 알려진 Forever, And No Time At All (2018)이 클래식을 기반으로 재현되었다면, Forever More (2020)에서는 재즈의 접근에서 재해석한 작품으로 다시 탄생한 예에서도, 두 가지 양식을 대하는 냇의 방식을 알 수 있다.

 

이번 앨범 역시 클래식과 재즈의 두 양식 사이에서 드러나는 표현의 차이를 다루고 있다. 피아노와 현악 4중주로 완성한 전작 Hope (2021)의 테마를, 재즈 쿼텟 형식으로 재해석 혹은 재구성한 것이 이번 앨범이다. 냇의 피아노와 일렉트로닉을 포함해, 기타 Robbie Melville, 베이스 Tamara Murphy, 드럼 Maddison Carter가 기본 포맷을 이루었으며, 바이올린 Lucy Warren, 비올라 Eunise Cheng, 첼로 Rebecca Proietto, 전자 하프 Mary Doumany, 색소폰 Joseph Lallo 등이 참여해 개별 트랙의 특징에 맞게 연주를 더하고 있다. 팬데믹과 산불 등의 재난적 상황에서 ‘희망’을 염원하며 완성한 전작을, 새로운 장르적 접근으로 갱신하는 과정에서 냇은 ‘회복’을 기원하며 이번 녹음에 임했다고 전한다.

 

전작에서 들었던 같은 테마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쿼텟의 특성과 사운드에 맞는 편곡을 통해 새로운 뉘앙스를 전달하고 있다. 멜로디와 코드 구성에서의 미묘한 변화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테마의 기본적인 오리지널리티에 비교적 충실한 재현을 보이고 있으며, 그만큼 쿼텟의 구성에서 보여주는 실내악적 엄밀함은 눈에 띄는 특징을 이루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엄격한 공간 활용은 원곡과의 관계에서 연유했다기보다는 냇의 기본적인 음악적 특징에 가깝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북유럽 스타일의 재즈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임프로바이징의 모티브를 개방하고 확장하는 과정에서도 공간의 자율성보다는 구성의 내밀함을 우위에 두고 있으며, 즉흥으로 이루어진 솔로 역시 인터랙티브 한 전통적인 반응보다는 인과적인 면밀함에 기반한 섬세함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한다면 재즈적인 요소를 활용하고 있지만, 이번 작업은 정확히 재즈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보다 더 확장적인 표현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하게 되는데, 일렉트로닉이나 현악의 복합적인 레이어를 활용하는 것 외에도, 기본 악기 자체의 다양한 사운드의 변주를 통해 보다 풍부한 표현을 담아내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는 재즈의 고유한 표현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때로는 모던 클래식의 특징이 엿보이기도 하고, 앰비언트 특유의 공간적 연출이 읽히는가 하면, 록 특유의 톤 사운드와 결합하여 포스트-록적인 분위기도 어렴풋이 풍기기도 한다.

 

이 안에 담긴 다면성을 재즈의 시각에서 해석하더라도 전혀 문제 될 것은 없으며, 장르가 지닌 폭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해소될 수 있는 공간 또한 충분하며, 재즈 외의 다른 접근으로 감상하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이 풍부하다. 그만큼 냇이 표현하고자 했던 ‘희망’이 험난한 과정일 수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지만, 음악 자체가 보여주는 명료함은 의지의 확고함을 드러내는 듯하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이 냇 특유의 깊이 있는 서정과 감성을 담아 완성했다는 점에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앨범이다. 이 앨범은 냇이 새로 설립한 Amica 레이블의 첫 번째 릴리스이기도 하다.

 

 

2023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