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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abellón Sintético - Mies van der Rohe's Dreams (Cyclical Dreams, 2023)

 

Pabellón Sintético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아르헨티나 전자음악가 겸 작곡가 Pablo Bilbao의 앨범.

 

파블로는 자신의 솔로 활동명 파벨리온 신테티코가 건축과 전자 음악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일범의 타이틀 또한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독일계 미국 건축가 Mies van der Rohe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서사이저가 전자신호의 발생과 증폭에 이르는 과정을 회로 도면으로 작성해 만든 전자장치라면, 전자 음악에서의 소리의 재생 또한 그 중간에 LFO, 필터, 엔벨로프 등 다양한 변수가 조합을 이룬 일종의 사운드 아키텍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임시 가설물로 설치한 건축물이 이후 하나의 독특한 예술적 양식으로 진화했듯이, 과거 실험적이고 독특한 표현에 집중했던 전자 음향이 현대에서는 일상적인 다양한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 또한 무척 유사하다.

 

파블로의 작업, 특히 앨범에서도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신서사이저의 가장 기본적인 사운드와 기능에 충실한 음악적 재현을 들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사운드의 튜닝과 기능의 활용에서는 정교함을 간직하고 있지만, 복잡한 디자인이나 패치 없이도 쉽게 구현할 수 있는 원초적인 표현들을 활용해 세션을 완성하고 있으며, 그 방식 또한 쉽게 연상할 수 있을 만큼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각 악기가 지닌 고유한 캐릭터는 명료하게 곡의 전개 속에 반영되며, 개별 사운드가 지닌 독특한 역사적 상징성으로 인해, 때로는 레트로한 과거의 감성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도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현대적인 감각 속에서 이를 담아내고 있어 상당히 인상적이다. 대부분 현대 악기를 사용하지만 과거의 제품을 복각한 모델을 활용해 아날로그 신서사이저의 사운드를 재현하고 있으며, 세미 모듈러나 디지털 악기도 사용하고 있어, 사운드의 운영에서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기도 한다.

 

이번 작업에서는 신서사이저를 이용한 다양한 모둘레이션이 어떻게 음악적인 창의와 연관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인상적인 작례를 선보이고 있다. 기존의 익숙한 고전적인 신서사이저의 사운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섬세하게 디자인한 사운드 자체가 지닌 선명한 자기표현은 물론, 필터나 LFO 등을 통해 이끌어내는 다양한 변화들 또한, 음악의 흐름에서 극적인 긴장과 몰입을 강화할 만큼, 정교하고 치밀하다. 때로는 과감한 변화를 선보이기도 하지만, 그 자차가 곡의 플로우를 방해하거나 진행을 굴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기본 테마가 지닌 표현의 확장성을 의외의 방식으로 확인시켜 주는가 하면, 때로는 묘사적 배경의 풍부한 이미지를 연출하기도 한다. 그만큼 모든 사운드와 구성은 마치 하나의 엄밀한 작곡 양식에 따라 철저하게 조율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고, 실제로 이와 같은 엄격함은 일렉트로닉이 지닌 고유한 표현이 기존의 음악적 언어와의 풍부한 접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기존 언어에 전자 음향을 더한 단순한 적용이 아닌, 새로운 표현과 창의를 완성하는 방식을 통해, 일렉트로닉의 양식을 견고하게 구축하는 지향점을 분명히 하고 있어, 전자 음악이 지닌 고유한 미적 가치를 인상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레트로한 사운드나 시퀀서 혹은 아르폐지에이터 등의 익숙한 기존 장치적 작법들을 활용하면서도, 파블로만의 감각을 담아내는 방식은 무척 흥미로우며, 과도한 레이어링을 피하면서도 차분한 모듈레이션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풍부한 공간적 이미지와 변화를 연출하는 섬세한 감성은 무척 인상적이다. 교과서적인 표현만으로도 얼마나 창의적인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를 담고 있는 듯한 앨범이다.

 

 

2023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