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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ierre Rousseau - Twenty: Music for Études N°20 (Ed Banger, 2023)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벨기에 출신 프로듀서 겸 사운드 다자이너 Pierre Rousseau의 앨범.

 

2010년대 초, Simon Mény와 Paradis라는 듀엣 프로젝트를 통해 음악 활동을 시작한 피에르는 2020년 이후 개인 활동과 더불어 현대 예술, 전시, 영화 등과 같은 주변의 다양한 학제와의 활발한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음악은 전자 음악 내의 특정한 장르적 경향성을 지향하지는 않는 대신, 여러 요소들 사이의 대비와 묘한 친밀감을 통해 명상적이면서도 몰입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매력이다. 이와 같은 요소들 사이의 대비와 대칭은 상징성을 지닌 사운드의 정교함에서 비롯하며, 이 외에도 미니멀과 맥시멀, 대중적 감각과 실험적 표현, 정과 동 등과 같은 다양한 대당들을 통해 복합적으로 완성된다.

 

이번 앨범은 피에르의 주변 산업과의 협업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으로, 상업 광고 및 영화 음악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앨범을 감상하다 보면 피에르의 개인 작업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음악 그 자체는 자신만의 고유한 호흡과 흐름을 이어가며 매혹적인 몰입을 경험하게 한다. 이번 작업은 프랑스 패션 업체 Études의 2022년 봄-여름 시즌 홍보 음악이며, 동시에 해당 브랜드 20번째 컬렉션을 모티브로 하는 Grégoire Dyer 감독의 단편 Twenty (2022)의 영상을 위한 녹음이기도 하다.

 

2012년에 설립한 남성 전문 브랜드 에튀드는 패션뿐만 아니라 출판을 포함한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포착하고, 이를 다시 자신들의 제품에 반영하는 등, 다양한 예술적 배경을 지닌 인물들과 꾸준한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별도의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브랜드를 모티브로 하는 창작의 자율성은 보장하는 대신, 개별 아티스트의 작업에 직접적인 홍보를 강요하지는 않으며, 당대의 현실성을 반영한 여러 작품을 통해 자사의 이미지를 완성한다. 이는 마치 Red Bull이 스포츠 지원 및 미디어 활동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를 상징화 및 전략화하는 마케팅 작업과 유사하며, 과거 BMW의 단편 영화 시리즈나, Mercedes-Benz의 뮤직 컴필레이션 등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세 명의 주인공이 도시와 자연을 배회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마침내 자신을 찾아가는 단편적인 과정을 그리고 있다. 후반의 내레이션과 극 중 텍스트를 제외하면 대사와 대화는 일절 등장하지 않으며, 도시 속의 고독과 자연 속의 고립이 묘한 콘트라스트를 이루고 있어,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묘한 감정의 흐름을 경험하게 한다. 도시와 자연의 시각적 콘트라스트는 피에르가 음악적 요소들 사이의 대비를 다루는 방식을 떠올리게 하지만, 정적 영화의 흐름과 음악의 진행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대칭적 연관을 보여주고 있어, 이 또한 흥미롭다. 화면의 속도와 음악의 호흡이 처음으로 일치하는 것은 도심 공간 속에 다수의 젊은이들이 모여 춤을 추는 장면으로, 그 외의 대다수의 장면에서는 각자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미묘한 동기화를 이루는 독특한 관계를 형성한다. 영화 속에서 수음한 현장음은 음악에서 필드 리코딩처럼 자연스럽게 레이어를 이루고 있으며, 영상과 사운드가 각자 연출한 시퀀스의 대비 그 자체 또한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때문에 영화와 음악은 독특한 연관을 구성하며 서로를 흡착하는 절묘함을 지니기도 한다.

 

피에르의 음악은 미니멀한 구성 안에서도 진행의 복합성을 전제로 하는 극적 변화의 표현에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주며, 시퀀싱과 엔벌로프의 변화를 통해 유도하는 감각의 흐름에서도 고유한 호흡을 지속하는 치밀함을 지니고 있다. 정교하게 큐레이팅한 단출한 소스를 활용하면서도, 개별 라인과 요소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구성과 조합을 유도하는 점진적인 플로우의 자연스러움은 물론, 아르폐지에이터를 이용한 간결한 흐름에서도 코드 진행을 활용해 음악적 내러티브를 완성하는 세련미도 포함한다. 전체의 곡을 하나의 믹스로 연결해 긴 호흡의 완급을 자연스럽게 조절하며 연출하는 몰입 또한 인상적이다. 독립적인 음악 작업으로서의 가치 또한 충분한, 매력적인 앨범이다.

 

 

2023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