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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ieter Nooten - Someone There (Rocket Girl, 2023)

 

네덜란드 음악가이자 작곡가 Pieter Nooten의 앨범.

 

1961년생인 피터는, 1970년대 말 로컬 밴드의 드러머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베이스와 키보드 등으로 위치를 옮겨가며 여러 밴드를 전전하던 중, 1980년대 초 뉴웨이브가 한참이던 암스테르담에서 Ronny Moorings와 Anka Wolbert를 만나 Clan of Xymox를 결성, 다크 웨이브의 새로운 흐름에 합류하며 대중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다. 팀을 떠난 이후에도 Michael Brook과 공동으로 Sleeps with the Fishes (1987)를 녹음하며 자신의 기념비적인 성과를 완성했고, 1990년대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솔로 작업에 매진하며, 새로운 흐름 속에서도 자신만의 음악적 언어를 발전시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이어오게 된다.

 

피터의 음악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탄생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 흐름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관을 확립하기를 원했고, 이러한 그의 노력은 자신과의 지속적인 단절을 시도하며, 프로듀서로 또는 뮤지션으로 각각의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기도 했다. 시대나 유행과 무관하게 피터는 늘 자신의 음악을 향해가고 있었던 셈이다. 최근과 같은 피터의 음악적 특징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Rocket Girl과의 서명 전후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경향적 특징을 보여주는 일련의 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다양한 예술 장르를 넘나드는 활발한 공동 작업에도 정성을 기울이며, 오늘과 같은 음악적 세계를 다지기 시작했다.

 

이번 앨범도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선보인 일련의 음악적 성과와 같은 맥락을 지속하고 있다. 다만 컴퓨터를 이용한 작편곡과 실제 연주 악기와의 협연을 담았던 기존 작업과는 달리, 이번 앨범은 암스테르담에 있는 자신의 홈 스튜디오에서 작곡, 믹싱, 마스터링까지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VST를 이용해 완성한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사운드 큐레이팅을 통해 연주 악기의 특성을 재현하는 한편, 온전한 양식의 오케스트레이션까지 구성하는 등, 나름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건반, 현악, 목관, 금관, 타악, 보이스 등의 고전적인 사운드를 조합하여 전통적인 양식의 연주 공간을 완성하고, 여기에 미세한 전자 음향을 더해 뉘앙스를 구체화하는 과정은, 마치 실제 오케스트라의 재현을 염두에 둔 편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동시에 피터는 개별 곡의 특징에 맞춰 가상 악기와 실재 연주 사이의 경계에서 파생하는 모호함과 선명함 사이를 오가기도 하며, 때로는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의 이질성을 직접 드러내며 명료한 간극을 활용한 대비를 보여주는 등, 사운드의 활용에서 나름의 유연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사운드 활용에서의 유연성은, 피터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더욱 다양하고 깊이 있게 완성하는 역할을 한다. 곡의 성격에 따라 현대적인 관현악의 배음을 충실히 재현하는가 하면, 때로는 일렉트로닉의 복합적인 레이어링을 어쿠스틱 사운드로 복원한 듯한 절충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고, 순수한 일렉트로닉 필드에 어쿠스틱의 요소를 더해 공간을 완성하는 등, 사운드의 구성에 따라 음악의 고유한 캐릭터와 특징을 완성하고 있다. 고전적인 양식에 충실한 공간 재현과 가상의 일렉트로닉을 기반으로 펼쳐진 사운드 필드 사이의 관계 또한 유동적이다. 어쿠스틱 사운드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양식의 공간에 간단한 비트 루프를 얹고, 개별 소스의 이펙트 조절을 통해 점진적으로 전자 음향의 특성이 부각되는 사운드 필드로 전환하는가 하면, Una Corda를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건반 음을 시퀀싱 한 패닝을 고전적 진행에 대비시켜 풍부한 이미지를 연출하기도 한다. 오르간 사운드에 LP 노이즈를 입혀 로우-파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이를 차츰 진행 과정 속에서 서로 분리하여 노이즈 플로우를 마치 빗소리와 같은 배경의 필드로 활용하는가 하면, 궁극에는 순수한 오르간 음향만 존재하도록 완성하는 등의 섬세한 사운드 연출력도 곡의 흐름을 보다 극적으로 구성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다면성을 떠올리게 하는 이러한 상이한 양식의 다양한 조합 방식 속에서도 각 악기별로 구성하는 라인, 카운터, 화음 등의 전통적 접근을 통해 앨범 전체의 음악적 맥락을 보다 명확히 정의하고 있다.

 

멜로디 라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세심한 전개, 오케스트레이션을 연상하게 하는 레이어링의 중첩과 이를 통해 연출하는 시네마틱 한 내러티브 등은, 이번 앨범을 통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감성적 요소의 일부이기도 하다. 가상 악기를 활용해 재연한 연주 음향이지만, 불안을 담은 듯한 미세한 털림과 쓸쓸함을 지닌 듯한 현의 질감 등, 사운드 그 자체만으로 정서적 함축을 암시하기도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과 규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피터 작업에서 관찰할 수 있는 섬세함과 선명함을 담고 있는 앨범임은 분명하다.

 

 

2023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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