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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ppy Ackroyd - Sketches (One Little Independent, 2017)


영국 작곡가 포피 애크로이드의 신보. 사실주의 미술 작가 Norman Ackroyd의 딸이며 이번 앨범 커버가 아버지 노만의 작품이다. 2012년 데뷔 이후 이번 앨범은 3년만에 발표되는 세 번째 앨범이며, 평소 개인 공연은 물론 얼마 전에 살펴 봤던 Hidden Orchestra의 라이브 팀의 일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이전 앨범들은 주로 자신이 직접 연주하는 피아노와 현악의 멀티 트레킹 녹음에 의지했던 것에 비해 이번에는 주로 피아노 솔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기존의 음악적 구성에서 드러나는 섬세한 서술적 특징이나 세밀한 사운드스케이프 등은 이번 앨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일부 트랙에서 묘사의 구체성을 위한 부분적인 효과의 사용이 있긴 하지만 앨범 전체는 포피의 감성이 반영된 작곡과 이를 형상화하는 피아노 연주로 이루어져 있다. 구체적 사물과 추상적 대상에 이르는 다양한 소재들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예전 작업들과 연관성을 찾아 볼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는 개별 곡들의 표제적 성격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에서는 예전과는 다른 일정한 거리가 존재하는 것도 분명하다. 실제로 기존 앨범에서 발표되었던 곡들을 전혀 다른 느낌으로 재해석하거나 피아노의 솔로 공간에 적합한 형식으로 재구성 해서 연주하기도 한다. 10개의 곡중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재해석된 연주는 6개인데, 진행과 구성에서 드러나는 형식적 완결성 보다는 음과 음 사이의 공간에 의미를 담아내며 음악적 묘사의 내밀함에 중점을 둔 모습들이 확연하다. 포피의 음악이 지닌 에피그라프적 성격이나 이번 앨범의 제목 자체에서 암시하는 묘사적 특징에도 불구하고 음반에 수록된 그녀의 솔로 연주들은 표현주의적인 해석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미덕이기도 하다. 마치 일상을 매개로 청자와 교감을 시도하는 듯한 태도는 나름 매력적이다. 답답하게 느껴지는 음향적 스테이지가 아쉽기는 하지만 진지한 대화를 위한 일상적 거리라고 생각하면 납득 가능하다.


2017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