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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urple Decades - Journey Test (Beacon Sound, 2023)

 

미국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Tristan Eckerson의 앰비언트 프로젝트 Purple Decades의 앨범.

 

트리스탄은 10대 시절부터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음악 경력을 쌓기 위해 분투한 것으로 전해지며, 시각 미디어를 위한 음악 제작과 사운드 디자인 관련 학위를 받은 이후 광고, TV, 단편 영화 등의 다양한 미디어 관련 분야에서 음악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작곡, 녹음에서부터 믹싱과 마스터링은 물론 커버 아트에 이르기까지 음악 제작의 전 과정을 직접 담당한다고 하는데, 그만큼 트리스탄의 모든 작업에는 자신의 음악적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트리스탄은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자신의 독립적인 음악 작업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초기만 하더라도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드러내지 않은 채, 다양한 장르적 표현을 옴니버스처럼 펼쳐 놓은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모던 클래식과 앰비언트는 물론 재즈적인 감성을 담은 연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표현을 소화하기도 했지만, 각각의 장르적 특징들이 서로 어떤 연관을 지녔는지에 대한 명확한 부연을 보여주지 않아, 마치 자신의 개인 관심사를 폭넓게 다룬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곧이어 1631 Recordings 레이블에서 발매한 일련의 작업은 피아노를 중심으로 하는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경향적 특징을 명확히 하며 자신의 음악적 색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Nils Frahm의 LEITER Verlag에서 편집한 Piano Day, Vol. 1 (2022)에도 트랙을 제공하는 등, 나름의 입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트리스탄의 이력을 되돌아보면, 어쩌면 앰비언트 프로젝트 Purple Decades의 작업은 당연한 음악적 귀결 혹은 경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미 그의 데뷔 초기에 선보였던 개인적 다양성의 일부를 이루기도 하고, 평소 미디어 관련 작업을 통해 제공한 다양한 기여 속에서도, 현재와 같은 모습은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세분화하여 독립적인 프로젝트로 나름의 개별적 특징을 명확히 하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또 다른 케릭터를 완성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반갑게 생각한다. 실제로 트리스탄은 테크니션에 가까운 피아노 연주자는 아니기 때문에, 나름의 표현의 한계를 새로운 음향적 접근을 통해 확장할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미디어 관련 분야에서 축적한 경험을 개인의 창의로 담아낼 수도 있어, 2020년부터 조심스럽게 선보인 이와 같은 음악적 선택은 분명 당연하다.

 

이번 앨범은 앰비언트를 장르적 성격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곳곳에 기악적 특징을 반영한 트리스탄 특유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배경과 전경을 기능적으로 분리해, 그 공간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기악적 특징을 명료하게 드러내는데, 이는 마치 피아노의 오른손과 왼손의 역할을 구분하는 일련의 유형화된 유기성을, 복합적인 레이어를 지닌 확장된 사운드 필드에서 재현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전경을 단지 멜로디 라인에 한정하지 않으며, 때로는 매시브 한 사운드로 이루어진 코드 진행의 형태를 띠기도 하고, 폴리포닉 한 사운드스케이프의 잔잔한 웨이브로 이루어지는 등, 그 양식은 무척 복합적이고 다양하다. 이러한 레이어링은 음악적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하며, 실제로 모든 곡은 저마다의 고유한 정서와 분위기를 밀도 있게 담아내어 깊고 명료한 울림을 전달하고 있다. 특히 단순한 스텝 시퀀싱이나 루프 스테이션으로 완성하지 않은 메인 라인에서 벨로시티의 미세한 흔들림은 감정 전달에서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개별 사운드는 마치 스티키 한 점도를 지닌 듯한 느낌으로 연출하고 있는데, 레이어들이 서로에게 흔적은 묻히고 남기며 점층을 이루며 독특한 공간적 밀도를 완성하기도 한다. 연주는 물론 구성 자체 또한 미니멀 한 느낌을 주지만, 그 안에서 유기적으로 얽힌 다양한 소스의 정교한 배열과, 여기에서 만드는 미묘한 배음 등은, 앨범이 담고자 하는 분위기를 더욱 농밀하게 해 준다.

 

펠트 하게 조율한 피아노의 톤 사운드, 부드럽고 미세한 텍스쳐 필드, 배경 뒤편 저 멀리 아련하게 펼친 필드 리코딩, 초저역에서부터 천천히 밀려오는 안개 같은 사운드스케이프 등, 이 모든 섬세함은 각각의 곡이 담고 있는 고유의 특징을 세분화한다. 동시에 앨범 전체의 분위기를 하나의 균일한 정서적 은유를 지닌 방식으로 담아내고 있어 무척 매력적이다. 정제된 우울감은 카타르시스와 관련 있음을 증명하는 앨범이다.

 

 

20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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