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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Rémi Fay - Funambulist (Les Productions Rayées, 2023)

 

프랑스 작곡가 Rémi Fay의 앨범.

 

레미는 최근에 데뷔한 젊은 작곡가로, Université de Lyon에서 영화 작곡 석사 학위를 받았고, 몇 개의 단편 영화 및 다큐멘터리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비교적 최근에는 관악, 현악, 내레이션 등으로 이루어진 소편성의 짧은 곡 8개를 엮은 15분 내외의 미니 앨범 Pleurésie (2020)를 통해, 소박하면서도 섬세한 자신의 음악 세계를 선보이기도 했다.

 

레이의 첫 번째 풀-랭스 리코딩인 이번 앨범은 전작에서 보여준 구성의 단출함을 더욱 극단화했고, 간결한 멜로디와 화성적 대칭을 이루는 기악적 편성을 극소화하여 피아노 중심의 연주를 선보인다. 전작에서도 보여준 미니멀한 특징을 부각하여 멜로디는 극히 추상적인 축약을 보여주고 있으며, 편성 또한 솔로를 기반으로, 곡에 따라 바이올린 Ben Russell과 첼로 Hamilton Berry의 연주가 더해진 더블 혹은 트리플 레이어로 이루어진 간결한 형식을 특징으로 한다.

 

미니멀한 구성과 단순한 코드의 진행을 중심으로 하는 소박한 아르페지오나 축약적인 멜로디로 이루어진 곡이지만, 미묘한 변주나 화성의 흔들림을 통해 내재된 텐션을 섬세하게 표출하기도 한다. 피아노 솔로에서는 각 음역대의 공간의 대비를 이용해 긴장을 구성하는데, 저역과 고역에서 서로 미묘하게 다른 사운드의 특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후반 작업의 개입으로 연출한 듯한 이러한 효과는 때로 연주의 원음에 개입하여 소리의 뉘앙스를 섬세하게 다듬는데, 저음의 경우 부드러우면서도 고유의 주파수 음역을 넘어선 깊은 극저역의 울림을 넓게 재현하는가 하면, 중고음역에서는 팰트 한 톤에 고유의 잔향을 긴 테일로 끌고 가며 여운을 강조하기도 한다. 저역의 울림을 극저역까지 끌어내려 평탄하고 단조로운 흐름에 극적 긴장을 유도하는가 하면, 고역의 투명함을 강조한 차가운 리버브의 긴 울림을 통해 공간의 개방감을 담아내기도 하는 등, 하나의 악기에서 서로 다른 특성의 대비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공간 자체의 느낌은 무척 건조하지만 악기 자체의 울림은 깊고 넓다. 서스테인과 릴리즈가 만들어내는 소리의 배음으로 공간의 여백을 채우며 소리 하나하나에 듣는 이의 청각을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현악과의 관계 속에서도 반응을 최소화하며 관조적인 긴장을 이어가고 있다. 바이올린의 경우에도 초고역의 울림을 개방하여 피아노의 극저음과 대비를 이루는가 하면, 곡의 성격에 따라 현악의 리버브를 각기 다른 특성으로 조율하여 피아노와 적절한 대칭적 연관과 균형을 유지하도록 연출하고 있다. 둘 사이의 관계는 안정적인 조화를 통해 서로에게 안착하기보다는 관조적인 거리감을 표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각 곡에 따라 피아노와 현악기가 이루는 공간적 대비는 물론 그 연관 또한 미묘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결국에는 아슬아슬하게 일련의 균형점에 수렴하도록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진행을 이어가는 모습은, 앨범의 타이틀인 ‘외줄 곡예사’를 떠올리게 한다. 의도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피아노 메커니컬 사운드의 수음은 마치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의 긴장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곡의 흐름과 전혀 무관한 소음조차 숨 막히는 음의 배열 속에 개입하는 외부의 자극림처럼 들리기도 하며, 정돈되지 않은 배경의 텍스쳐는 곡예사를 끌어당기는 중력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등, 녹음 환경의 열악함이 단점으로 다가오기보다는 나름 앨범의 고유한 특징처럼 들릴 만큼, 음악 그 자체가 전달하는 깊이가 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은 분명하다.

 

미니멀하고 단조로운 흐름 속에서도 간단한 변주와 사운드 캐릭터의 변화만으로도 극적 긴장을 유도하는 방식은 인상적이다. 호흡과 심박마저도 곡의 조심스러운 진행 속도에 일치하게 만드는 몰입적인 경험도 매력적이다. 미묘한 흔들림 속에서도 균형점을 섬세하게 지속하지만, 안도감보다는 그 과정의 고단함을 담아낸 듯하여, 그 표현은 묘사적이면서도 동시에 나름의 이야기 구조를 담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소리로 공간을 표현하고 잔향으로 여백을 담은 그림 같은 앨범이기도 하다.

 

 

2023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