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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Reiner Witzel & Richie Beirach Quintet - The World Within (JazzSick, 2023)

 

독일 색소폰 연주자 Reiner Witzel과 미국 피아니스트 Richie Beirach의 퀸텟 앨범.

 

서로 다른 활동 경력과 배경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듯한 두 뮤지션이, 최근 들어 꾸준한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면서도 흥미롭다. 라이너는 지금까지 주로 대중 취향의 편안한 분위기의 연주를 들려줬다면, 리치는 정통적인 스텐스에서부터 실험적인 영역을 아우르는, 둘 다 서로의 교집합을 찾기 힘든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을 이어왔는데, 2010년대 말에는 의외의 조합을 통해 다양한 환경에서 일련의 공연과 더불어 협업의 기록을 선보이게 된다. 드러머 Christian Scheuber와 베이스 Joscha Oetz과 함께 한 쿼텟의 Live (2020)를 비롯해 모두 두 장의 공연 앨범을 발매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번 작업은 이들의 첫 번째 스튜디오 라이브라고 한다.

 

이전 라이브 리코딩에서는 주로 유명 스탠더드가 주요 레퍼토리였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오리지널이 대부분이라, 자신들의 음악적 표현에 보다 집중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번 녹음에는 트럼펫 Alex Sipiagin, 베이스 Joscha Oetz, 드럼 Tobias Frohnhöfer 등이 참여하고 있어, 라인-업에서도 흥미를 느낄만한 요소가 충분하다. 솔로 연주자로서뿐만 아니라 리더로서도 충분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알렉스가 브라스의 두 축 중 하나를 담당하며 라이너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최근 선보인 그의 퀸텟 리드 작 Mel's Vision (2023)을 이번 앨범과 비교해서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듯싶다. 베이스와 드럼을 담당하는 요샤와 토비아스는, 리치와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왔던 Christian Scheuber의 타계 이후 새롭게 진용을 갖추게 된 트리오의 멤버들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에는 고인을 위해 헌정한 “Requiem For Chris” 외에도, 크리스티안의 오리지널인 “Old Moscow”를 마지막 트랙에 수록하고 있어, 이번 작업에도 그가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한다.

 

이번 작업은 라이너와 리치의 협업, 혹은 리치 트리오의 확장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이번 퀸텟 조합의 고유한 특징을 더욱 강하게 부각하는, 나름의 유니크 한 면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퀸텟은 과거 포스트-밥의 전통적 핵심을 현대의 무대에서 복원하는 듯한, 일련의 균일한 언어적 공감대를 바탕에 두고 있으며, 그 표현은 마치 웨인과 허비가 함께 했던 마일즈의 제2기 황금 퀸텟을 새롭게 재현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특히 리치는 이번 녹음의 일부 트랙에서 펜더 로즈를 이용한 연주를 들려주는데, 1970년대에 윌리처나 전자 피아노를 종종 사용했던 반면, 1980년대 이후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전자 악기의 사운드를 들려주는 것은, 고전 시대의 사운드 복원은 물론, 리치 자신의 이전 활동 이력까지 요약한다고 느끼게 한다.

 

그만큼 이번 앨범에서 퀸텟이 취하고 있는 기본적인 스텐스는 확고하다. 전통적인 양식의 작곡과 진행은 물론, 모달 어프로치를 기반으로 하는 전자 음향의 활용 또한, 흔히 말하는 재즈의 황금기를 떠올리게 하는 풍만한 기시감을 경험하게 해 준다. 현대적인 해석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언어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음악적 표현임을 증명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다만 이를 바라보고 재현하는 시각은 분명 현대적이며, 오늘날의 음향 기술을 활용해 전통이 지닌 세련된 미적 표현을 복원하는 것만으로도 고전적 양식을 대하는 감성이 갱신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개별 라인의 선명함을 부각하면서도 전체 공간에 균일한 밀도를 채워 앙상블의 냉철한 열기를 에어리 한 분위기에 담아 감상의 쾌감을 더하고 있다. 고전적인 정위감 대신 각 파트가 점하는 기능적 역할에 따라 그 위상을 섬세하게 조율하여 공간적 균형을 담아내고, 개별 파트의 선명성을 드러내며 각 라인 간의 상호 연관을 직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완성하여, 자연스러운 감상 속에서도 분석적인 몰입을 배려하고 있다.

 

리치의 서정적 모던함을 담아낸 연주도 포함하고 있고, 브라스 라인이 완성하는 인상적인 프레이즈는 물론, 개인의 창의적 표현까지 감상할 수 있는 솔로에 이르기까지, 이들 퀸텟 조합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는 앨범이다. 열기 가득하면서도 여유롭기까지 하며, 몇 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매번 새로움을 전해주는 작업이다. 성의 없는 커버 아트와, 아직 1월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올해 베스트 중 하나로 손꼽고 싶은 앨범이다.

 

 

20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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