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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Robert Haigh - Creatures of the Deep (Unseen Worlds, 2017)


영국 뮤지션 로버트 헤이의 신보. 1970년대 말부터 이어진 로브의 음악 활동은 80년대의 Sema로 대표되는 시절과 90년대의 Omni Trio로 이어지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음악 지형으로의 이동을 보여 왔다. 최근의 음악 활동은 2000년대 말부터 시작된 Siren 레이블을 중심으로 한 일련을 발매작들을 통해 구체화되었는데, 피아노 솔로를 이용한 짧은 시적인 단편들을 중심으로 하는 모던 클래시컬 지향의 연주곡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그 이전 그룹 활동에서의 아방가르드한 표출적인 음악이나 드럼 앤 베이스의 감각적인 표현들과는 다소 거리가 느껴지는 음악들이다. 하지만 로브 자신의 개인 명의로 이루어진 솔로 활동에만 집중해 그 일련의 궤적들을 연결해보면 어쩌면 꾸준히 이어진 연속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이번 앨범이야 말고 이전 솔로 앨범들과의 비교에서 특이점이 유독 강하게 관찰되는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솔로 앨범에는 크게 두 가지의 흐름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최근 몇 년 동안의 솔로 앨범에서 보여 왔던 피아노 중심으로 하는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기본 어법에 충실한 시적 표현의 연주곡들이고, 두 번째는 전자악기를 활용해 누아르적인 분위기와 효과를 연출하는 앰비언트적인 사운드의 구성이다. 물론 많은 연주자들은 이 두 가지 요소를 상호 응용하여 하나의 단일한 음악적 체계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지만, 로브는 이 둘을 서로 대비시키며 그 간극을 넓히려고 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때문에 이 앨범 안에서는 이 두 가지 음악적 요소들은 그 언어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뮤지션이 묘사하고자 하는 분위기와 효과에 있어서도 분명한 대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물론 로브는 앨범 전체의 진행 속에서 이러한 대비가 해소되고 화해하는 과정도 묘사하고 있지만, 이 또한 두 언어 사이의 넓은 스펙트럼을 확인하는 듯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쩌면 이러한 로브의 음악적 전략은 무척 현명한 것일 수도 있다. 미적 긴장은 완벽함이 아닌 자연스러운 균열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8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