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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Samuel Savenberg - Unsung (Präsens Editionen, 2023)

 

독일과 스위스에서 활동 중인 DJ 겸 프로듀서 Samuel Savenberg의 앨범.

 

1987년생인 사무엘은 전자 외에도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전해지며, 2000년대 말부터 대중적인 취향을 지닌 다양한 그룹 경험을 거쳤고, 2010년대 중반 S S S S라는 예명으로 자신의 작업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게 된다. 흔히들 정의하는 테크노의 큰 범주에 속한 작업이지만 브로큰 비트나 인더스트리얼 계열의 특징을 적극 수용하며 자신만의 강한 개성을 지닌 음악을 선보인다. 댄서블 한 감각적인 리듬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구성에서는 실험적인 양식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특성을 지니며, 특히 최근 들어 강한 에너지와 밀도를 지닌 일련의 작업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분위기를 특화하는데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S S S S라는 이름 대신 자신의 본명으로 작업을 발매한 계기에 대해서, 혹은 기존 활동명을 계속 사용할지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음악적인 특색에 미묘한 변화를 동반하는 것은 분명하다. 음악을 통해 분위기와 감정의 변화를 유도하는 음악적 치밀함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전 S S S S의 주요 모티브로 활용했던, 클라이맥스라 향하는 지속적인 빌드-업 구조나 분할적인 비트 시퀀싱을 통해 완성했던 감각의 자극은 다른 양식과 요소로 대체되었다. 다만 세밀하게 가공된 다양한 음향적 요소의 활용과, 이를 통해 공간을 포화한 밀도로 가득 채우기 위한 치밀한 음악적 전략은 건재하다.

 

이번 앨범은 사무엘이 지금까지 작업했던 자료를 모두 분실한 이후인, 2022년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작성한 곡들로 이루어졌으며, 자신의 사운드 큐레이팅 외에도, 일부 트랙에서는 Die Selektion 시절의 동료들인 Hannes Rief가 트럼펫과 프렌치호른의 라인을 더하고 Max Rieger가 연주 및 녹음에 참여하고 있으며, 부가적인 리얼 퍼커션 작업에 Dominik Bienz가 게스트로 함께 한다. 일부 트랙에 연주 악기의 특성을 활용하고 있지만, 이는 앨범 전체의 내용이나 분위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느낌이 강하다. 섬세하게 다듬어진 음향의 각 요소는 곡의 구조 속에서 명료한 상징적 표현을 이루고 있어, 극적 구성을 지닌 플로우 속에서 이러한 사운드 캐릭터는 큰 힘을 발휘한다. 일렉트로닉의 구조 속에도 기악의 고전적 특성을 특별한 왜곡이나 변형 없이 반영하고 있으며, 겹층의 레이어로 이루어진 브라스의 구성은 물론, 리얼 퍼커션의 개입은 비트 시퀀싱의 플로우와는 다른 생동감을 만들어내며, 이전 작업에서 접할 수 없었던 고전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사무엘 또한 어쿠스틱의 특징에 기반한 소스의 선택을 적극 반영하며, 일렉트로닉의 특성과 대비를 이루는가 하면, 개별 사운드가 지닌 정교한 캐릭터를 보여주면서도 다른 음향과의 연관 속에서 형성하는 복합적인 효과들 또한 섬세하게 다루고 있어, 경계의 존재와 모호함을 동시에 의도하는 듯한 모습을 곳곳에서 드러내기도 한다.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사운드를 대질시키는 방식에서도 둘 사이의 풍부한 배음과 하모니를 구성해 안정적인 호흡을 완성하는 방식은 물론,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여러 텍스쳐가 충돌하는 듯한 긴장을 연출하는 등, 일관성보다는 다양한 흐름을 지닌 복합적인 양식의 구성을 보여준다. 충만한 밀도로 공간을 채우며 다변화하는 요소들 사이의 긴장과 조화의 관계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비트를 중심으로 진행했던 기존의 구성에서 멜로디의 개입을 활용하며 다면적인 특징을 조심스럽게 부각한다. 일관된 흐름을 보였던 선형적인 구조 대신 복합적인 양식을 지닌 플로우로 완성하고, 고밀도로 중첩된 사운드의 집합은 레이어링이라는 느낌보다는 마치 정교한 편곡을 통해 구축된 일련의 편성처럼 느껴질 만큼 모든 곡은 입체적이고, 각각의 트랙은 저마다의 고유한 다변적인 흐름을 지니고 있다.

 

화려하면서도 정교하고, 거칠면서도 섬세한 구성을 지닌 음악은 강한 몰입을 경험하게 한다. 레트로한 신서사이저의 폴리포닉 한 사운드를 활용해 관악기와의 공간적인 배음을 유연하게 완성하며 고전적인 익숙함을 연출하는가 하면, 극저역에서 초고역에 이르는 폭넓은 음역대를 담아낸 극단적인 음향의 대비나, 날카로운 긴장을 유발하는 극적인 효과의 개입을 통해 낯선 감정의 동요를 유도하는 등, 익숙함과 낯섦의 대비와 교차는 마치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긴장과 이완의 예측 불가능한 반복을 이어간다. 불안과 위안이 교차하는 독특한 서사를 지닌 매력적인 앨범이다.

 

 

2023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