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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Simon Leoza - L'enfer d'un monde (Rosemarie, 2023)

 

Simon Leoza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캐나다 현대 작곡가 Simon P. Castonguay의 앨범.

 

시몬은 전문 교육 없이, 타고난 재능과 오랜 기간에 걸쳐 본능적으로 습득한 음악적 언어와 표현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적 성과는 물론 여러 뮤지션과의 협업을 이룬 뮤지션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Tambour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모던 클래시컬과 일렉트로닉의 접점을 확장하며 장르적 경계에서의 포괄적 접근을 선보였으며, 이는 최근 Simon Leoza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활동에서도 이어지는 그만의 고유한 음악적 특징을 이루고 있다.

 

이번 앨범은 2022년 8월에 초연한 ZemmourBallet 무용단의 L'enfer d'un monde를 위한 음악으로, 가정 폭력에 맞선 시민 행동을 촉구하는 내용을 다룬다고 하며, 성에 대한 포용과 비차별 등 사회적인 이슈를 소제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 안무가 겸 무용수인 Nicolas Zemmour가 예술 감독을 맡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수의 단편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보여준 시몬은 발레단과의 협업을 통해 강한 주제 의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동시에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적 특징 또한 인상적으로 담아내고 있어, 개인 작업으로서의 의미도 함께 포착할 수 있다.

 

이번 앨범에서도 클래식, 미니멀리즘, 앰비언트, 일렉트로닉 등의 장르적 포용성은 큰 특징을 이룬다. 시몬은 이번 작업에서도 단순한 장르적 혼용이 아닌, 하나의 체계화된 언어 속에서 유연성을 지닌 다양한 표현을 실현하고 있다. 미니멀리즘과 신고전주의의 경계를 자신의 언어로 와해하고 하나의 공간 속에서 동일한 흐름으로 배열하는가 하면, 이와 같은 정교한 구성 안에서도 다른 장르적 요소가 전혀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개입할 수 있는 개방성을 동시에 지니기도 한다. 이는 일렉트로닉의 구성을 지닌 공간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고유한 장르적 특징을 완성하는 동시에, 다른 장르적 요소를 지닌 레이어가 자연스럽게 중첩을 이루며 하나의 총체성을 지닌 표현으로 재현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장르적 경계의 유연성은 기악적 구성의 활용에서의 통상적인 방식과는 다른 정교함을 기반으로 한다. 피아노 및 현악 4중주를 기본으로 하는 어쿠스틱과, 다양한 특징으로 이루어진 전자 음향은 서로를 구분하지 않고, 각각의 역할과 기능에 따라, 개별 곡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위상을 명확히 한다. 연주 악기와 전자 음향의 다양한 관계에 대한 통합적인 사고를 보여주며, 그 상호 관계는 정의되지 않는 유연성과 역동성을 지닌다. 각각의 개별 레이어가 이루는 연관과 구성의 구체적 방식에 따라 곡의 성격은 명확해지며, 이 과정에서도 각각의 소스가 지닌 고유의 캐릭터 또한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다. 이처럼 다양한 음향적 특징을 선명하게 부각하고 그 대비와 조화의 균형점을 다양한 접근 속에서 포착하는 치밀함을 읽을 수 있다. 연주 악기의 경우 고전적인 실내악적 형식의 활용 외에도, 현악기 특유의 표현과 다양한 텍스쳐는 물론, 앙상블을 통해 연출하는 독특한 배음 등을 섬세하게 조율하고 있으며, 이는 일렉트로닉과의 관계 속에서 단순한 기능적 역할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하여, 전체 음악이 지닌 복합적 다면성을 강하게 부각한다. 코드의 변화에 기반을 둔 스텝 시퀀싱과 사운드스케이프의 레이어링을 통해 정교한 일렉트로닉의 앙상블을 구성하고, 그 위에 현악 4중주의 대위적 연관을 완성하며 음악적 총체성을 실현한다. 통상적인 모던 클래시컬의 경향적 특징을 반영한 구성 속에서도, 글리치한 텍스쳐와 감각적인 비트의 능동성에 기대어 입체적인 공간 구성을 완성하는가 하면, 이와 같은 조합의 변화를 이용해 나름의 내러티브적인 흐름을 완성하기도 한다.

 

앨범 전체의 주제와 연관된 개별 곡의 표제적인 성격을 반영한 구성과,\ 이에 알맞은 분위기를 연출하여, 때로는 시네마틱 한 플로우를 보여주는가 하면, 곡의 성격에 따라 내밀한 밀도로 텐션을 조율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고, 구성의 복합성이 지닌 강렬함을 표출하고 있지만, 앨범 전체의 분위기는 관조적이라는 인상을 줄 만큼 냉철함을 잃지 않고 있는데, 이는 시몬의 기존 작업에서 보여준 특징과도 일치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주제 의식과 음악적 표현이 일체를 이룬 창의적인 작업이다.

 

 

2023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