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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Simone Giudice - Alone (Affin, 2023)

 

이탈리아 사운드 디자이너 겸 작곡가 Simone Giudice의 앨범.

 

클럽 DJ로 처음 음악 활동을 시작한 시몬은, 음악에 대한 갈망으로 믹싱과 마스터링 등 사운드 엔지니어링을 공부했지만,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뒤늦게 로마의 "Santa Cecilia" Conservatory of Music에 입학해 전자음악 작곡을 배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에서 시몬은 “자신 안에 있는 것을 음악으로 바꾸는 법”을 배웠고 기술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개념적인 면에서도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힌다.

 

Delirio를 통해 선보인 데뷔작 Oltre (2019)는 시몬의 음악이 이미 그 자체로 완성형의 독창성을 지닌다는 점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앨범이다. 대중적인 언어로부터 영감을 받았지만 실험적 깊이를 포용하고 있으며, 구성의 명료함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다면성을 동시에 담고 있어 큰 주목을 받았고, Semantica 레이블은 차기작을 자신들의 카탈로그로 발매할 것을 먼저 제안하며 Materia (2021)를 선보이게 된다. 단 두 장의 정규 작업임에도 그 임팩트는 대단했는데, Affin의 수장이자 베테랑 음악가 겸 프로듀서인 Joachim Spieth는 현재 자신에게 영향을 준 뮤지션 중 한 명으로 시몬을 거명하기도 했고, 이는 요하임이 음악적 언어를 정리하기 위해 작업한 Reshape (2022)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이번 시몬의 작업을 요하임의 레이블을 통해 발매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시몬은 일렉트로닉, 앰비언트, 드론, 모던 클래시컬 등 다양한 음악적 특징에 기반하고 있지만, 어느 한쪽으로 경도되지 않는 총체성을 지향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표현 또한 다면성을 표출하는 방식이 아닌 하나의 집약적인 언어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짧은 음악 경력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집약적 총체성이 마치 시몬 자신의 고유한 음악적 언어처럼 전달된다는 점은 놀랍다. 다양한 장르적 표현을 추상화하여 이를 자신의 음악적 체계 속에서 구체화하여 고유의 언어로 활용하는 모습은 유연하면서도 완고하기까지 하다. 다양한 장르적 수용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그만큼 시몬의 음악은 민감하며, 그 자체로 풍부한 진화의 가능성을 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어느 하나의 장르로 귀결되지 않는 음악적 현재성은 내적 견고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톤과 텍스쳐의 중첩을 통해 강한 밀도를 연출하면서도 중심을 이루는 사운드의 라인을 통해 공간의 고요한 흐름을 완성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드론, 비트, 사운드스케이프, 연주 악기의 멜로디 등 다양한 요소들을 레이어링 하면서도, 때로는 직접적인 음악적 연관이 희미하게 보일지라도, 공간의 여백이 자연스럽게 이들을 흡수하며 스스로를 전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흐름의 중심을 이루는 요소는 피아노나 기타, 오르간 등의 단순한 라인이기도 하고, 때로는 반복적인 루프의 시퀀싱일 수도 있지만, 다양한 톤과 텍스쳐를 지닌 여러 사운드가 서서히 그 주변에 흡착하며 공간과 밀도의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통해 플로우를 완성하는, 비교적 명료한 구성을 보여준다. 구성의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간 안에서 여러 톤과 텍스쳐가 서로 대질하며 연출하는 텐션은, 폴리포닉 한 다면성을 담아내는 동시에 매시브 한 밀도의 덩어리처럼 전달되기도 하여, 흐름을 이끄는 중심 사운드와 앙상블을 이루며 마치 협주곡을 듣는 듯한 장엄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때문에 음악은 마치 여러 악기들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레이션의 집합적인 사운드로 전달되기도 하고, 때로는 여러 겹의 섬세한 레이어들이 각각의 명료성을 유지하면서도 마치 하나의 거대한 응집체 밀려오기도 하여, 각 곡의 특징에 따른 개별성도 선명하게 부각한다.

 

단순한 소리 그 자체가 전달하는 밀도감만으로도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를 깊이 있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은 놀랍고 인상적이다. 흐름을 이어가는 메인 사운드는 마치 시몬 자신의 시선 혹은 정서를 상징하는 듯하며, 다양한 요소를 통해 주변의 변화를 포착하는 모습은 관조적이면서도, 때로는 그로부터 애써 무심한 듯한 뉘앙스에서는 독특한 슈게이즈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 어떠한 과장이나 수사 없이, 음악적인 응집만으로 이 모든 것을 완성한 점만으로도 우리가 시몬에 주목할 이유는 충분하다.

 

 

2023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