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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Slagr - Linde (Hubro, 2022)

노르웨이 전통 현악기 하르당에르 피들을 연주하는 Anne Hytta, 첼리스트 Katrine Schiøtt, 비브라폰 및 튠 글라스 연주자 Amund Sjølie Sveen으로 이루어진 트리오 Slagr의 앨범. 슬라기르는 2000년대 초에 결성되어, 2015년 첼로를 담당했던 원년 멤버 Sigrun Eng의 자리를 카트린느가 대신한 것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룹이다. 사운드의 배열을 통한 실험적 구성의 연주에서부터 민속적 테마를 실내악의 공간적 규범에서 재현하는 접근에 이르기까지, 트리오는 멤버 각자의 기악적 특성과 장점을 통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모티브로 활용하는 음악적 창의를 보여준다. 민속적인 색감의 하르당에르 피들, 고전적인 텍스쳐의 첼로, 공명과 투명한 공간감을 소리로 드러내는 비브라폰과 튠 글라스의 하모니는, 마치 문명화 문화를 초월하는 근엄한 음악적 상상력을 제공한다. 통산 6번째 정규에 해당하는 이번 앨범은 카트린느가 출산 휴가 중에 작곡한 오리지널로 이루어졌으며, 각 멤버가 연주하는 악기 특유의 사운드가 앙상블을 이루며 이전에 비해 더욱 묵상적인 형식의 표현을 완성하고 있다. 특히 고립적인 개별 공간 속에서 최소한의 연관성을 바탕으로 구성되는 듯한 앙상블을 들려주며, 소리의 잔향과 여백이 이루는 쓸쓸하고 적막한 느낌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여운을 남긴다. 멜로디를 이끄는 악기 하나가 전면에 배치되면 그 후면에서 다른 두 파트는 미니멀한 반복으로 이루어진 배경을 구성하거나, 두 악기의 대위적 진행이 펼쳐지면 그 여백에 섬세한 디테일을 첨언하는 등, 전체적으로 무척 간결한 방식의 연주를 보여준다. 미니멀 하지만 정교한 음의 배열로 완성된 배경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치밀한 밀도감을 보여주고 있어, 그 역할 또한 전면의 멜로디에 비해 결코 상대화할 수 없는 존재감을 지닌다. 공명 악기는 잔향과 여음까지 현악과 대위적 조화를 이루고, 서로 대비적인 텍스쳐의 중첩은 애소테릭 한 공간을 연출한다. 비브라폰 및 튠 글라스 사운드의 자연발생적인 서스테인과 여음은 건조한 리버브를 지닌 두 현악기와의 앙상블에서 여백을 채우는 동시에, 이들 트리오가 다루는 고전적이고 민속적인 모티브를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하모니로 완성한다. 슬라기르 특유의 테마에 고요한 적막과 음악적 몰입을 끌어내는 명료하고 섬세한 접근은 물론, 규범에 가까운 엄격함을 통해 창의적인 결과를 도출한 방식 또한 인상적인 앨범이다.

 

2022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