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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Slowly Rolling Camera - Flow (Edition, 2023)

 

영국의 창의적인 재즈 그룹 Slowly Rolling Camera의 앨범.

 

2013년 결성 초기에 트립합과 재즈의 감각적인 통합을 기반으로 소울, 힙합, 일렉트로닉 등의 여러 요소들을 접목하여 창의적인 성과를 선보였던 SRC는 Juniper (2018)를 계기로 3인 체제로 정비하며 음악적 진로에 대한 변화를 예고하게 된다. 보컬을 담당했던 Dionne Bennett의 탈퇴 이후, 나머지 멤버인 피아노/키보드 Dave Stapleton, 드럼 Elliot Bennett, 일렉트로닉/신서사이저 Deri Roberts 등은 그룹을 재정비하면서, SRC을 단순한 트리오 형식이 아닌, 주변 뮤지션들과의 협업을 전제로 하는 확장적인 음악적 플랫폼으로 개방하게 되는데, 이는 당연히 팀의 음악적 성격에서 큰 변화를 암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2018년의 앨범이 그만큼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면 Where the Streets Lead (2021)는 SRC라는 개방적인 그룹 형식이 보여줄 수 있는 유연함과 창의성을, 자신들만의 유니크한 시선을 담아내며, 어떻게 음악적으로 응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인상적인 결과물을 담고 있다. 스트링 세션을 포함한 여러 게스트의 참여를 통해 다양한 표현과 색을 입혀가면서도, 지금까지 SRC의 이름으로 보여줬던 독특한 정서적 침전을 다면적인 분위기 속에 재현하면서, 그룹의 새로운 음악적 방향성이 옳았음을 실천적으로 증명하게 된다.

 

이번 앨범은 고정 멤버와 다름없는 기타 Stuart McCallum을 포함해 색소폰 Josh Arcoleo과 트럼펫 Verneri Pohjola이 참여하고 있어, 전작에 비해 상당히 축소된 편성에 기반하고 있다. SRC의 정규 카탈로그에 올리고 있으면서도, 카약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단편 영화 The River of Mirrors (2023)를 위한 음악 작업의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감각적인 음악적 형상 속에서도 내재된 암울감을 숨기지 않는 SRC 특유의 음악적 분위기나, 이를 가능하게 하는 여리고 예민한 듯하면서도 고유의 밀도감을 지속하는 사운드스케이프는 물론, 다양한 감정을 직관적으로 반영하는 임프로바이징의 직관적인 모티브 등을 떠올린다면, 어쩌면 이들의 연주가 영화적 소재와도 나름 좋은 조화를 이루지 않을까 짐작하게 된다.

 

물론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SRC 고유의 내밀한 표현이 농밀하게 표출되는 인상적인 경험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영화 음악이라는 특성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구조적으로 완성한 테마보다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과도 같은 미니멀한 흐름에 기반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악적으로도 간결한 구성을 지니며, 전경과 배경의 유기적 연관을 지속하면서도 그 역할에 대한 명확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기존 SRC가 묘사적인 분위기에 대한 기능을 담당한다면, 색소폰과 트럼펫은 자율적 표현을 기반으로 하는 프레이즈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배경의 경우 섬세한 사운드스케이프로 구성한 공간은 마치 앰비언트와도 같은 장르적 분위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풍부한 텍스쳐에 음향적 묘사를 더하며,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고유한 음악적 재현을 완성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 위에 스웰 톤의 여린 기타가 더해지면 마치 슈게이즈와도 같은 느낌을 연출하기도 하고, 피아노의 라인이 레이어링 되면 또 다른 장르적 분위기를 표출하는 등, 여리고 섬세한 사운드스케이프는 다면적이면서도 유연함을 지닌 풍부한 묘사적 배경을 완성한다. 이와 같은 배경은 색소폰과 트럼펫은 물론 기타나 피아노의 자율적 표현을 개방하며, 임프로바이징이 자신만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는 토대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부분은 색소폰과 트럼펫은 각자의 공간에서 서로 쉽게 대면하지는 않지만, 후반부 몇몇 트랙에서는 인상적인 조우를 보여주고 있는데, 서로의 화성학적 연관을 확인하며 엄격하게 구성한 프레이즈를 선보이는가 하면, 각각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두 개의 라인이 교차를 이루며 완성한 연주 또한 무척 감동적이다.

 

모든 사운드는 고유의 톤과 텍스쳐는 물론 각자의 벨로시티를 통해, 서로에 대해 유기적이면서도 강박적이지 않은 긴밀한 여유를 특징으로 하여, 마치 하나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융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플로우가 지닌 담담하면서도 낭만적인 속도는 마치 느린 회전수로 서서히 돌아가는 구형 필름 촬영기를 떠올리게 하여, 그 어느 때보다 Slowly Rolling Camera라는 팀 이름과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결성 10주년에 어울리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앨범이다.

 

 

202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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