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Spencer Pope - The Dark, The Day (29th Street Editions, 2023)

 

미국 피아노/키보드 연주자 겸 작곡가 Daniel Newberry이 이끄는 Spencer Pope의 앨범.

 

뮤지션도 레이블도 모두 생소한 앨범을, 음악 사이트에서 제안한 리스트에서, 단순히 인상적인 커버 아트만을 보고 무작정 듣기 시작했다가, 몇 번을 반복해서 듣고 있는 모습을 보고 Spencer Pope에 대해 찾아본다. 10여 년 전에 The Dark, The Light (2012)라는 타이틀로 피아노/키보드,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이루어진 쿼텟 앨범을 발매했다는 정보 외에는 특별한 레퍼런스도 존재하지 않으며, Daniel Newberry가 개설한 사이트에서 이들의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과 저작권 정보를 확인하고서 그 관계를 추측할 뿐이다. 이번 앨범에 대한 특별한 정보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전작과 유사하게 쿼텟 형식을 기반으로 관악과 현악을 포함한 여러 악기들이 함께 음악을 완성하고 있다.

 

다분히 익숙한 기악적 사운드를 활용하고 그 범위 또한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는 대신, 진행과 흐름에 알맞은 적절한 큐레이션을 통해 각 곡에 적합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어, 친숙함과 편안함을 염두에 둔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다분히 악기 본연의 날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사운드 튜닝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연주에 담고자 했던 음악적 진솔함은 더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한다. 재즈, 포크, 록 등의 여러 유형적 특징이 안정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어, 대중 친화적인 취향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안정적인 음악적 흐름이 연출하는 정서적 밀도가 정교한 기악적 레이어링을 통해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은 인상적이다. 특별히 의도한 극적인 빌드-업 없이도 차분하게 더해지는 다양한 악기들의 레이어를 통해 지속성을 지닌 음악적 내러티브를 완성하는가 하면, 안정적인 플로우 그 자체가 축적하는 깊이감만으로도 충분한 메시지 전달의 효과를 보여준다.

 

임프로바이징의 모티브를 활용해 진행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제한된 영역에서 사적 표현을 전개하거나, 때로는 오롯한 피아노 솔로의 순간도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밴드 혹은 앙상블 중심의 공간 활용을 우위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공간 구성은 강박적이지 않으며, 흐름과 진행 속에서 서서히 응집되는 듯한 자연스러움을 특징으로 하고 있어, 그 안에 풍부한 정서와 감정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여 무척 여유롭고 편안하다. 특히 정교한 코드 보이싱과 풍부한 감정을 절제된 방식으로 담아낸 멜로디가 잔잔하면서도 큰 울림을 연출하는가 하면, 다양한 기악적 조합이 완성하는 사운드의 앙상블이 정서적 풍성함을 유도하는 등, 자신의 방식으로 나름 여러 분위기를 다루려고 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앨범은 절제된 우울감을 다루면서도, 음악이 전하는 메시지는 텁텁해진 생활에 잔잔한 위로를 전한다. 음악에 담긴 익숙한 표현들은 한참을 잊고 지냈던 기억을 되살리기도 하고, 일상의 진솔한 표현이 지닌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듯하다. 오랜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것과 같은 기분 좋은 앨범이다.

 

 

2023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