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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Steve Moore - Analog Sensitivity (KPM, 2021)

미국 전자음악가 겸 프로듀서 Steve Moore의 앨범. 최근 몇 년 동안 영화음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오랜만에 자신의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했다.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의외의 앨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스티브의 음악을 조금이라도 들었던 청자라면 그 의미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듯싶다. 결론적으로 이 앨범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통적인 연주 악기들의 사운드와는 무관하다. 기존 악기의 텍스쳐를 재현하거나 음향적 특징을 담아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앨범을 들었다면, 시종일관 지속하는 전자음에 분명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일렉트로닉과 아날로그라는 어울리지 않는 어감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앨범에는 고전적인 방식의 신서사이저에서 만들어지는 고유의 소리를 이용해 제작되었다. 랩톱에 저장된 여러 가지 디지털 샘플들을 불러와 외장 키보드나 컨트롤러로 연주하는 방식을 흔히 연상하기 쉽지만, 스티브가 이번 앨범에서 연주하는 악기는 전자 장비 그 자체에서 만들어내는 소리를 이용해 연주하고 있다. 음색 조작을 위해 컴퓨터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기계 장치 그 자체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한 소리는 장비 그 자체가 지닌 특징과 한계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VST처럼 프리셋 저장도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원하는 소리를 얻기 위해서는 노브나 패치의 위치를 기억해둬야 하는 번거로움도 존재한다. 그래도 클래스 D 앰프가 주는 효율과 편리함 대신 큰 덩치의 클래스 A 두 대를 모노 블록으로 연결하고 감상을 위해 30분의 예열을 거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환자'(sic!)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듯이, 아날로그 신서사이저가 만들어내는 독특하고 고유한 질감을 선호하는 뮤지션과 청자도 생각보다 적지 않다. 처음 신서사이저가 만들어졌을 때 기존 악기의 소리를 재현하는 것을 목적에 두지 않고,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가공의 사운드를 목적으로 연주되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아날로그 감성'은 새로움을 갈망했던 그 시절의 열정에 대한 헌정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2021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