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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The Black Dog - Music For Airport Lounges (Dust Science, 2023)

 

영국 전자음악 그룹 The Black Dog의 앨범.

 

TBD는 1980년대 말 처음 결성했고, 우여곡절을 거친 이후 초기 멤버인 Ken Downie과 함께 2000년대 초에 합류한 Martin Dust과 Richard Dust 형제와 함께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전자음악 프로젝트다. 2005년 더스트 형제가 설립한 Dust Science는 대중적인 양식의 일렉트로닉에서부터 실험적인 작품에 이르는 폭넓은 음악을 선보이는 한편, 자신들이 속한 TBD의 작업의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둔 다양한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이번 앨범과 관련한 성과 중 하나는, 올해 초 미니 앨범 Music For Dead Airports (2023) 공개를 전후하여, 기존 Soma Quality를 통해 발매했던 Music For Real Airports (2010)를 레이블의 라이브러리에 포함하면서 재발매를 진행한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Real Airports 앨범은 Brian Eno의 Music for Airports (1978)에 대한 TBD의 “현대적인 답변”을 담고 있는 작업으로, 승객들이 경험할 수 있는 “공항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다루고 있다. 브라이언의 작업이 피아노, 보이스, 신서사이저 등을 응용하여 일련의 반복적 특성을 지닌 미니멀한 구성을 통해, 큰 감정의 기복이 없는 일종의 편안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평온함을 유도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 안에는 불안과 불편이 존재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먹먹하게 연출한 피아노와 아날로그 신서사이저의 가상적 사운드 등이 이루는,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순환적 반복은, 마치 흐릿한 멍한 의식이 잠재된 무의식의 불안을 은폐하는 듯한 모습처럼 비치기도 하고, 실제 진행 속에서 미묘하게 드러나는 미세한 디스토션이나 균열 등은, 그 긴장이 분열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때문에 TBD가 브라이언에 대해 행했던 “답변”은 비판이라기보다 고전이 보여준 평온함의 이면에 감춰진 또 다른 핵심을, 자신들의 관점에서 복원한 것이라는 생각도 가능할 듯싶다.

 

이번 앨범은 Real Airports 앨범의 연장 속에 있으며, 여기에 수록된 곡 중 상당수는 해당 앨범 발매를 전후에 Dust Science 레이블을 통해 공개한 두 편의 미니 앨범 Thee Lounge (2010)와 Subject to Delays (2010)의 곡들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공항을 이용하면서 기록한 200여 시간의 아카이브를 이용해, 많은 여행객이 “불만을 느끼는 공통의 장소”인 라운지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도 함께 담고 있다. 불편과 혼잡 외에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무력감, 통제와 절차에 순응해야 하는 무기력 등, “현대인의 실존적 불안과 불안을 하나의 작은 공간에 압축하여 표현한 것”으로, TBG는 공항 라운지를 바라보고 있다. 기대와 희망으로 들뜬 이상과 무력하고 공허한 현실의 이분법이 교차하는 상징적 장소인 공항 라운지는 결국 우리의 실재 일상이기도 한 셈이다.

 

앨범은 기존 발표곡 및 신곡 모두 총 13개의 트랙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믹스를 거쳐, 공항 라운지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이야기의 연속처럼 풀어가고 있다. 첫 트랙은 설렘과 흥분으로 들뜬 아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필드리코딩을, 이와 대비를 이루는 드론의 웨이브 플로우를 레이어링 하여, 앨범 전체의 분위기를 요약하는 듯한 강렬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마지막 곡에서는 긴 여정을 끝내고 도착했을 때의 기진맥진함과 멍한 피로감을 묘사하고 있어, 앨범은 나름의 수미쌍관의 형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하나의 믹스로 엮어, 공항 로비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과 긴장에 자연스럽게 몰입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하나의 서사라기보다는 단편적이거나 때로는 복합적인 다양한 정서와 분위기가 교차하는 옴니버스에 가까운 형식이다. 극저역과 초고역을 포함하는 넓은 음역대를 활용하여 로우와 하이의 극적 대비를 통해 불안과 김장의 극단을 묘사하는가 하면, 둔탁한 비트를 이용해 불안한 심박의 리듬을 담아내기도 한다. 멜로디를 중심으로 하는 진행이나 서정적 표현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노이즈 필드의 거친 텍스쳐, 날카로운 펄스, 공격적인 톤 사운드 등을 통해 묘한 대비를 연출하여 정서의 다면성과 분열의 요소로 다뤄진다. 긴장과 불안을 암시하는, 매시브 하게 굵직한 큰 덩어리들로 전달하는 듯한 사운드의 조합, 그와는 다른 공간계 이펙트의 적용으로 선명하게 전달하는 주변적 효과음이나 현장 녹음 등의 대비는, 다분히 고전적인 작법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세밀한 묘사를 통해 장소성을 부각하고 정서의 이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TBD의 특징과 독창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 틈 속에서 여권과 티켓을 손에 쥐고 지연된 비행기를 혼자 몇 시간 동안 기다렸던 모스크바에서의 기억도 떠오르고, 쾌적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도 쉽게 마음 둘 곳 없어 괜한 면세 잔치 벌였던 싱가포르에서의 경험도 생각난다. 일방적으로 감정이나 분위기를 전달하여 듣는 이를 대상화하는 것이 아닌, 한 번쯤 공항 라운지에서 겪었을 법한 묘한 감정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스스로 떠올리게 된다는 점이 앨범의 큰 몰입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소리를 통해 공항 라운지를 고찰한 인문학적 성찰이 담긴 앨범이다.

 

 

202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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