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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chotomy - To Vanish (Earshift, 2023)

 

호주 재즈 트리오 Trichotomy의 앨범.

 

Queensland Conservatorium에 재학 중이던 피아니스트 Sean Foran의 주도로 1999년, 드럼 John Parker, 베이스 Pat Marchisella 등이 모여 결성한 트리코토미는 이후 호주 재즈계를 대표하는 창의적인 트로오로 발돋움하게 된다. 전통적인 스텐스에서 개별 공간의 자율성을 확장하며 트리오가 지닌 풍부한 다이내믹을 재현하며 여러 편의 인상적인 성과를 선보였고, 다양한 멜로디와 풍부한 리듬을 바탕으로 즉흥적 창의를 더한 연주 공간의 유연성은 주변 뮤지션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음악적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0년대 중반, Samuel Vincent가 새로운 베이스 주자로 합류했고, 이후 선보인 Known-Unknown (2016)은 트리코토미의 변화를 암시하는 듯한 미묘함을 담고 있었다.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음악적 확장을 시도했던 기존 방식과는 달리, 모든 변화와 역동의 동력을 내면화하며 트리오 자체에서 갱신의 모티브를 찾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인터랙티브 한 연관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통해 트리오의 유기적 조합과 관련한 풍부한 예시를 담아내려고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유연성보다는 유기성을, 자율적 개방보다는 구조적 체계화를 염두에 둔 다양한 노력을 선보이기도 한다.

 

6년 만에 선보인 이번 앨범은, 전작에서의 변화가 무엇을 암시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는 듯하다. 이번 앨범은 트리코토미의 음악적 확장을 위한, 이전 자신들의 전통적인 스텐스에서의 연주와 새로운 접근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다양한 과정을 담고 있다. 인터랙티브 한 재즈의 긴밀함은 일련의 구조화된 체계를 통해 재현되고 있으며, 진행 또한 전통적인 방식 대신 완결성을 지닌 규범화된 플로우를 통해, 작곡의 의지를 실현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구조화된 공간 안에서의 자율적 표현을 개방하는 과정 또한 독특하며, 임프로바이징의 확장 속에서도 체계화된 진행 양식을 견고하게 구축하는 전개 또한 인상적이다. 개별 연주 또한 구성과 형식에 알맞은 세밀한 표현을 재현하고 있는데, 간결한 라인의 반복적인 멜로디는 마치 루프와도 같은 구조를 완성하는가 하면, 대위적인 프레이즈의 전개 속에서도 새로운 레이어의 개입을 개방하는 등의 모습은 마치 정교한 시퀀싱을 보는 듯하다. 또한 연주 과정 혹은 후반 작업에서 새로운 음향적 특징이 더해지는 것을 염두에 둔 듯한 명료함과 디테일도 엿볼 수 있는데,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의 접합적 경계를 확장하며 이에 대응하는 연주는 자연스럽게 구조에 녹아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운드와 음향적 접근의 도입은 트리코토미의 구성적 체계를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펙터를 포함한 전자 장비나 일렉트로닉은 물론 스틸 페달 기타나 바순 등과 같은 외부 연주자들의 레이어와 더불어, 뮤트 한 피아노나 현의 진동, 베이스의 여러 주법 등을 통해 기본 악기의 다양한 사운드를 활용하여 전통적인 피아노 트리오의 음향적 제한을 확장하는 실험을 보여준다. 새로운 사운드를 접목했지만, 이미 익숙한 음향적 특징을 활용하고 있으며, 일렉트로닉의 경우에도 고전적인 신서사이저의 특징적 요소에 기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분히 익숙한 요소들을 활용하면서도 음악적 구성에서는 기존의 양식을 새롭게 재구성하여 트리코토미만의 창의적 공간을 완성하는데, 튜닝한 사운드와 음향적 개입을 통해 정교한 레이어링과 일련의 빌드-업을 거치며 진행을 이어지는가 하면, 포스트-프로덕션 과정에서도 공간적 특징을 새롭게 정의하거나 다양한 이펙트를 이용해 디테일을 완성하기도 한다. 특히 기존 트리코토미 특유의 연주적 특징을 충분히 반영하면서도, 음향적 기술을 더해 트리오의 공간적 제한을 확장하는 모습은, 트리오의 퍼포먼스의 효과를 극대화하며 전통과 현대의 경계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정의하는 모습처럼 보이는 동시에, 트리코토미의 새로운 음악적 특장점을 갱신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형식적으로는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의 접합처럼 보이고 있지만, 이를 통해 확장한 것은 단순히 재즈의 외연뿐만이 아니며, 폭넓게 보면 연주의 형식과 임프로바이징을 접목한 일렉트로닉, 앰비언트, 모던 클래시컬 등을 포함하는 장르적 확장을 다루는 듯하다. 자신들만의 고유한 오리지널을 통해 선보인 일부 곡은 현대 작곡의 특성을 포함해 보다 광범위한 실험적 표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모든 특징들이 하나의 체계화된 양식으로, 트리코토미 고유의 언어로 표현되는 것은 인상적이며, 이들의 음악이 이후 어떤 진화를 이루게 될 것인지 더욱 궁금해지는 앨범이다.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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