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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Tristan Eckerson - Disarm (1631 Recordings, 2017)


미국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트리스탄 에커슨의 신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음악이 지닌 개괄적 특징을 요약하기란 쉽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으로 음반 활동을 시작한 것이 비교적 최근인 탓도 있지만 지금까지 발매한 정규 앨범이나 EP 등에서 매우 다양한 장르적 특징들이 남발(sic!)되기 때문이다. 앰비언트 계열의 전자음악을 선보이는가 하면 어느 순간에는 재즈적인 감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CUES (2016) 같은 앨범에서 드러나듯 이러한 다양한 음악적 특징들이 하나의 단일한 음악적 체계 속에서 구성되었다는 느낌보다는 마치 옴니버스 영화나 컴필레이션 앨범처럼 각기 다른 트랙들로 넘어갈 때마다 난무하기도 한다. 이후 1631 Recordings 레이블에서 발매된 Trozo (2016)를 계기로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이게 된다. 동네 마트 진열장 같았던 음악적 양식과 장르적 요소들이 피아노 솔로라는 제한된 형식 속에서 에커슨의 음악적 상상력과 기악적 재능은 한결 정돈된 형식으로 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번 앨범 역시 솔로 연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작의 명료함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막상 두 앨범을 비교 대상으로 놓고 보면 많은 차이점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전작에서의 투명했지만 날이 섰던 피아노 톤이 이번 앨범에서는 무척 온화해졌으며 필드 리코딩의 특징을 살리기라도 하듯 건반이나 페달의 눌림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소리까지 섬세하게 음악의 한 요소로 담아내고 있다. 때문에 같은 솔로 앨범이라고 해도 두 리코딩 사이에 존재하는 온도 차이는 분명하다. 이번 솔로 앨범은 온화한 피아노 톤 이면에 내재된 표현의 섬세함이 두드러진다. 마치 현악기를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듯한 정교함이 있는가 하면 건반과 피아노 현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짐작하게 하는 먹먹함도 느끼게 한다. 보다 정교한 완급의 조절을 통해 마치 캔버스에 붓질하듯 음악적 표현을 구체화하는 방식 또한 인상적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오히려 더 풍부한 음악적 콘텐츠를 구현한 셈이다. 잿빛 하늘 아래로 어스름하게 보이는 풍경 같은 앨범이다.


2017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