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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Vetle Nærø - From Moments (7K!, 2023)

 

노르웨이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Vetle Nærø의 앨범.

 

2000년생인 베틀은 이제 겨우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임에도 모던 클래시컬 계열에서 큰 주목을 받는 뮤지션이다.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했고 9살에 정식 레슨 시작, 쇼팽과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며 실력을 연마했고, Philip Glass와 Arvo Part 등의 미니멀리즘을 접하면서 음악을 통해 감정과 생각을 전하는 법을 배웠다고 하며, 사이드 프로젝트로 재즈 트리오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14세부터 시작한 작곡은 이후 개인 작업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18세에 자신의 오리지널로 이루어진 피아노 연주 앨범 By Heart (2018)를 자주 발매 형식으로 발표하며 데뷔한다. 신고전주의적 색감으로 채색한 인상 깊은 음악을 들려주면서도 성숙한 감정 표현은 물론 깊이 있는 사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작곡에 기반한 섬세한 재현과 더불어 모티브를 확장하며 즉흥적 해석을 더하는 완숙미도 엿볼 수 있다. 이를 계기로 7K!를 통해 두 번째 앨범 Introspection (2021)을 발표하고, 레이블의 주요한 협업자로 부상하여 여러 컴필레이션에 작업을 기고하는 한편, LEITER Verlag의 피아노 데이 공식 앨범 Piano Day Vol. 1 (2022)에도 참여하며 오늘날 베틀의 입지를 확인하게 된다.

 

작곡과 즉흥이 모호하게 서로 걸치면서도 긴밀한 연관을 구성하는 것이 베틀 음악이 들려주는 큰 매력 중 하나로, 이번 앨범에서는 이와 같은 특징이 보다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불필요한 수사대신 명료한 표현으로 감정을 진솔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그 구성 역시 피아노를 중심으로 하는 간결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이전 작업에서도 일렉트로닉을 활용한 공간 구성의 다양한 예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단순한 주변적인 묘사에 머물지 않고, 기본 연주에 효과적으로 개입하며 다양한 유형의 연관을 이루기도 한다. 때로는 피아노의 사운드에 입혀져 독특한 텍스쳐를 드러내는가 하면, 묘사적 배경의 세밀한 농도를 연출하기도 한다. 여전히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일련의 대칭 혹은 보완적 관계를 형성하며 풍부한 뉘앙스를 완성하지만, 이전에 비해 그 기능과 작용이 중요한 요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여전히 피아노 중심의 구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지만, 톤과 사운드의 섬세한 조율을 통해 연주 이면의 다양한 정서를 깊이 있게 다루는 모습을 보여준다. 피아노만으로 이루어진 연주에서도 펠트 한 톤으로 조율한 톤은 명료한 코드와 간결한 라인으로 공간을 여유롭게 개방하고 있으면서도, 음 하나하나의 섬세함보다는 여음과 배음이 중첩을 이루며 연출하는 독특한 여운을 강조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때로는 전자 음향과의 레이어링으로 원음이 희미하게 드러나도록 연출하는가 하면, 노이즈와 같은 텍스쳐를 이용해 미묘한 클리핑 효과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와 같은 의도적인 표현들은 균일한 정서의 흐름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기 위한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필드 리코딩을 이용해 이와 같은 정서적 반영을 구체화하기도 하지만, 사운드 그 자체의 조율과 연주 중에 자연스럽게 채집한, 공간의 밀도를 담은 음향만으로도 분위기는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자신의 취약함을 감추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인상을 갖기도 하고, 성숙함의 이면에 여전히 남아 있는 불안이 반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단편적인 12곡은, 그 어떠한 과장이나 과잉 없이, 모든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진솔함을 담아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어, 젊은 신예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운 성숙함과 진지함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음악을 듣다 보면 개인 일기를 엿보는 듯한 기분을 갖게 하는 앨범이다.

 

 

2023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