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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Wanderwelle - All Hands Bury The Cliffs At Sea (Important, 2023)

 

네덜란드 뮤지션 Alexander Bartels와 Phil van Dulm으로 이루어진 앰비언트 프로젝트 Wanderwelle의 앨범.

 

알렉산더와 필은 해이그 인근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자연으로 둘러싸인 그곳의 경관으로부터 많은 음악적 영감을 받았다고 전한다. 역사와 미술사 등을 전공한 학자이기도 하며, 2010년대 중반 반더웰레를 결성해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데뷔 초 Silent Season 레이블 발매작들의 경우 테크노 스타일을 접목한 제의적 몽환을 재현하는 듯한 앰비언트를 들려줬던 것에 비해, 비슷한 시기 A Strangely Isolated Place를 통해 선보인 단편과 이후의 정규 앨범에서는 신비주의를 중심으로 이어진 일련의 스토리텔링을 선보이며, 나름의 음악적 다양성을 지향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근 들어 반더웰레는 어쿠스틱을 기반으로 하는 기악적 연주를 활용해 사운드 팔레트를 확장하며, 기존의 신서사이저와 필드리코딩 등을 결합한 앰비언트의 경향적 특징에, 자신들만의 스토리텔링을 담은 음악적 스타일을 구체화하는 일련의 작품을 연이어 선보인다.

 

이와 같은 변화를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Important를 통해 발표한 Black Clouds Above The Bows (2022)를 꼽을 수 있다. 팬데믹 기간에 완성한 해당 작업은, 기후 변화로 인해 더욱 파괴적인 형태로 발전한 자연재해와 관련한 두 음악가의 문제의식을 담은 앨범으로, 강력해진 폭풍의 파괴적 활동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두 사람의 직접적인 경험과 더불어 해당 지역의 해양 전문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내용을 구체화한 것으로 전해지는 해당 작업은 총 3부작으로 예고되었고, 이번 앨범은 그 두 번째에 해당한다.

 

전작에서 폭풍의 위협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악기로 골동품 기병 트럼펫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기후 변화로 거세진 파도로 인한 해안 침식을 고발하는 사운드로 망가진 오르간이 등장하고 있다. 반더웰레가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의 한 마을을 방문했을 때, 침식으로 무너져 내린 주변 마을과 그곳의 작은 교회를 발견했고, 그 안에서 연주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채 방치된 오르간의 소리를 현장 녹음하여 이번 작업에 활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작에서 기병의 트럼펫이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경고의 의미로 사용되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기후 환경의 위기에 경종을 울리는 수단으로 활용한 것처럼, 이번 작업에서의 고장 난 오르간은 바다의 끊임없는 활동을 묘사하는가 하면 다양한 해양 신화 혹은 전설을 상징하는 핵심 요소로, 앨범 전체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각각의 곡은 다양한 톤 사운드의 악기들이 오르간과 일련의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며 진행을 이어가는 방식을 취한다. 오르간을 중심으로 각 트랙의 테마에 알맞은 사운드를 큐레이팅하여 그 관계를 구성하고, 주변에 다양한 효과나 필드리코딩 등을 배치하여 상황이나 배경의 구체성을 담아내며, 일련의 음악적 내러티브를 완성하는 기본적인 구조적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오르간과 첼로의 미니멀한 공간 구성을 통해 서로의 관계가 지속적인 역전과 반전을 이루며 뒤바뀌는 긴장을 연출하는가 하면, 브라스 계열의 사운드와 중첩을 이루며 조용하면서도 잔잔한 거대한 물결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듯한 드론의 플로우 연출하기도 한다. 오르간과 신서사이저 혹은 연주 악기는 기본적인 양식의 화성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레이어를 이루기도 하고, 하나의 미니멀한 멜로디 라인을 구축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곡의 기본적인 플로우는 중첩된 사운드의 섬세한 드론과 이야기의 전개를 담아내는 간결한 멜로디 라인의 상호 관계에 바탕을 주고 있으며, 동시에 그 상황에 대한 구체성을 담아내는, 물결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듯한 노이즈의 웨이브 플로우와 같은 주변적 효과 혹은 필드리코딩 등을 통해 완성을 이룬다. 음역대와 위상을 통해 다분히 기능적으로 그 역할을 구분하고 있지만, 상호 연관성에 기반한 유기적 특징을 지니고 있어, 이들의 관계는 하나의 견고한 구조물을 대하는 듯한 치밀함을 보여주며, 이들 관계의 변화에 따라 이야기는 묘사가 되기도 하고, 정서적 분위기를 담아내는 내러티브가 되기도 한다. 개별 사운드가 지닌 고유한 상징성을 부각하고 있어, 내러티브의 흐름에 따라 녹음한 연주 음원의 튜닝이나 디스토션 등을 통해 그 세밀함을 더하는가 하면, 그 자체로 음악적 설득력을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대신 개별 사운드의 화려한 효과보다는 각 요소들과의 내밀한 연관 혹은 내적 긴밀성을 강조하고 있어, 앨범 전체는 일련의 고유한 정서적 일관성을 지속하고 있다.

 

주변 사운드와의 관계에서 존재를 드러냈던 고장 난 오르간이 마지막 트랙에서는 평온한 음색으로 곡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매인으로 등장하고 있어, 반더웰레의 음악적 염원이 무엇을 향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전작은 Samuel Taylor Coleridge의 대표 시 ”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를 모티브로 분위기를 연출했고, 이번 앨범은 거대한 크기의 전설적인 바다 생물 아스피도첼론의 전설이 타이틀과 커버의 기원이라고 한다. A State of Decrepitude라는 가제로 예고한 3부작의 완결은 올해 안에 발매를 예정하고 있다.

 

 

2023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