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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We Stood Like Kings - Away (Kapitän Platte, 2022)

 

벨기에 4인조 포스트-록 그룹 We Stood Like Kings의 앨범.

 

2011년 피아노/신서사이저 Judith Hoorens, 기타 Steven Van Isterdael, 베이스 Marijn Cobbaert, 드럼 Mathieu Waterkeyn 등으로 결성한 WSLK는 이후 소소한 구성원의 변화를 거치게 되면서, 데뷔 10주년 되던 2021년에는 유일한 원년 멤버 쥬디트를 포함해 기타 Diego Di Vito, 베이스 Colin Delloye, 드럼 Lucas Vanderputten 등으로 현재의 진용을 갖추게 된다. 데뷔 이후 지금까지 멤버들의 집단적 합의에 따라 완성한 작곡을 기반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음에도, 꾸준히 WSLK의 고유한 음악적 특징이 꾸준히 지속되는 것은, 쥬디트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듯싶다. 실제로 그녀가 La Reine Seule이라는 솔로 프로젝트를 통해 선보인 개인 작업 Visages (2022)에서는 그룹 활동과는 차별화된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적 표현과 더불어, WSLK에서의 느낄 수 있었던 감수성을 동시에 담고 있기도 하다.

 

WSLK의 가장 눈부신 업적이라면 무성영화 3부작 시리즈를 꼽을 수밖에 없는데, 독일 Walther Ruttmann 감독의 Berlin: Symphony of a Great City (1927), 소련 Dziga Vertov의 A Sixth Part of the World (1926), 미국 Godfrey Reggio의 Koyaanisqatsi (1982) 등의 작품들에 자신들의 음악적 스코어를 더한 일련의 연작을 선보인다. Berlin 1927 (2014), USSR 1926 (2015), USA 1982 (2017)로 이어진 시리즈는 클래식과 록의 언어와 표현을 접목한 WSLK의 독특한 음악적 문법을 통해 영화적 내러티브를 재현하며 완성도 높은 서정미를 담고 있다. 네오 클래식과 록의 접목 속에서 기존의 프로그래시브나 아트록의 성과들을 우회적으로 수용하며 자신들의 음악이 지닌 다면성을 더욱 구체화하는가 하기도 한다. 이후의 Classical Re:Works (2020)는 바로크에서 현대에 이르는 고전에 대한 자신들만의 해석을 통해, WSLK만의 음악적 독창성을 다시 한번 어필하고 있다.

 

이번 앨범은 공식적인 WSLK의 다섯 번째 정규 작업이며, 라트비아 신인 Gints Zilbalodis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수상작 Away (2019)를 위한 새로운 스코어의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긴츠는 시나리오, 연출, 작화, 작곡 등 모든 작업을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의 입장에서 완성했다. 비행기 사고로 혼자 남겨진 소년 주인공이 다친 작은 새와 함께 검은 괴물에게 쫓기면서 집으로 향해 가는 여정을 담은 애니메이션은, 단순한 작화 속에서도 미묘한 정교함은 물론, 조용한 구성 속에서도 초현실적인 표현을 담고 있으며, 음악은 일렉트로닉 계열의 앰비언트에 기반한 미니멀한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WSLK의 작업은 영화적 내러티브에 충실한 흐름을 이어가면서, 각 상황에 대한 묘사와 정서의 표현을 보다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서사의 규모에 알맞은 사운드의 볼륨을 확보하고 있다.

 

이번 앨범은 이전과는 다른 미묘한 변화를 담고 있는 듯하지만, 음악적 서사를 이끌어가는 피아노와 대칭적 긴장과 대비 속에서 공간을 서서히 구체화하는 록 사운드는 기존 WSLK에서 봐왔던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빌드-업과 극적 전개를 통해 음악적 내러티브를 구체화하는 과정 또한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에 충실하다. 애니메이션의 내용과 연관을 지닌 구체적 표현을 위해 활용하는 신서사이저는 제한적이면서도 명료하여, 기존 그룹의 사운드와 전혀 이질감이 없으며, 오히려 기타의 여러 주법이나 효과와의 조화를 이루며 적절히 흐름에 안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기타의 다양한 톤 사운드와 이펙트의 활용은 WSLK 특유의 다면적 특징을 보다 풍부하게 완성하고 있으며, 피아노와의 관계에서 이루는 복합적인 대응과 프레이즈는 그룹의 다이내믹을 보다 넓은 레인지에서 재현할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각 트랙의 특징에 맞게 각기 다른 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전면에 부각하는 악기들 상호 관계 또한 다양하게 변하기도 하여, 이전 작업에서 특징을 이룬 피아노의 역할은 상대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사운드 구성에서의 기본적인 공식이나 진행에서의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WSLK이 지닌 다면적 특징을 보다 구체화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하게 된다.

 

거대 괴물의 모습을 담은 앨범 커버 아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앨범은 애니메이션과의 연관 속에서 새로운 스코어를 내용으로 삼고 있지만, 영화와 완벽한 싱크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또한 오리지널 스코어와 직접 대응하는 연관성도 크게 부각하지 않고 있어, 오히려 이번 앨범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 봐도 무방하다. 때문에 기존 무성영화 3부작과의 연관성을 더 떠올릴 수 있으며, 영화적 상상력을 활용한 그룹 특유의 음악적 감성을 담았다고 해도 무리는 없을 듯싶다. 무엇보다 우리가 WSLK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을 충실히 다루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2023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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