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Yugen - Tears and Light (Dodicilune, 2023)

 

이탈리아 신생 트리오 Yugen의 데뷔 앨범.

 

피아노/신서사이저 Katya Fiorentino, 베이스 Stefano Compagnone, 드럼 Maurizio De Tommasi 등, 음악계에 갖 발을 내디딘 세 명의 젊은 연주자로 이루어진 유겐 트리오는 2020년에 결성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외에 개인적인 이력이나 경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이탈리아 Dodicilune 레이블을 통해 트리오의 첫 데뷔작을 발표한다는 점만으로도 흥미를 끌 만한 요소는 충분하며, 실제 이들의 연주를 들어봐도 단단한 음악적인 토대와 풍부한 확장성을 지닌 그룹임을 직감할 수 있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의 기본적인 스텐스는 북유럽적인 전통에 가깝고, 여기에 모던한 현대적인 양식에서부터 실험적 구성을 지닌 개방적 표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의 표현 속에 자신들의 개성을 담아내는 독창성을 보여준다. 이번 앨범은 트리오 연주 외에도 전자기타 Valerio Daniele, 트럼펫 Giorgio Distante, 일렉트로닉스 Francesco Massaro 등이 게스트로 참여하여, 각자 한 트랙씩의 협연을 함께 수록하고 있는데, 다양한 유형의 공간 활용 방식을 소개하며, 유겐의 음악이 이후 어떻게 확장적 형태로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유겐의 연주는 무척 엄격하면서도 유연한 적용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첫 트랙에 등장한 개방적 공간을 활용해 개인의 자율성을 접목한 연주에서, 이들이 유러피언 아방가르드의 영향을 받은 팀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지만, 이후 이어지는 연주는 실내악적 규범을 연상하게 하는 엄격함을 기반으로 북유럽 특유의 경향적 특징을 담아내기도 한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유형의 음악적 차이를 경험했을 때의 첫 느낌은, 당혹스러움보다 신선한 호기심이 들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두 유형 사이에 콘트라스트 대신 자연스러운 그러데이션의 연속이 보이는 듯했고, 이를 표현하는 톤에서도 나름의 균일함을 전재로 하고 있다. 몇 번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겉으로 드러나는 유형과 양식의 차이는 유겐이 표현할 수 있는 스펙트럼의 넓이이며, 실제로 실험적인 공간 구성을 위해 치밀한 내적 연관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 엄밀한 규범적 표현 역시 자율성을 응집하는 자신들의 방식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유연한 내적 긴밀성을 기반으로 하는 팀 워크의 장점은 기타, 트럼펫, 일렉트로닉스 등이 더해진 공간 속에서 큰 힘을 보여주기도 하여, 트리오를 음악적 확장을 위한 일종의 플랫폼으로 활용한 지속적인 작업도 충분히 기대하게 된다.

 

트리오의 연주만을 듣더라도 멤버들은 각자 자신의 역할과 기능을 다분화하여 곡의 특성과 진행의 경과 속에서 다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피아노의 왼손과 오른손은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연주를 이어가는가 하면, 때로는 루프 시퀀싱과 라인으로 구분하여 마치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베이스 역시 각기 다른 톤 사운드로 곡의 양식이나 성격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이러한 조합을 활용해 트리오는 발라드 양식의 연주에서부터 몽환적인 테마를 다루는 재즈-록의 분위기까지 유연하게 표현한다. 신서사이저를 이용해 특별한 효과나 감각적 표현을 더 하지는 않지만, 섬세한 사운드스케이프나 라인의 하모닉스 등을 더하며 곡이 지닌 테마를 정교하게 완성한다. 마치 하나의 평면 공간을 공유하는 세계의 층위가 개별 곡의 특징과 진행에 따라 전후 배열을 미세하게 달리하며 입체감을 담아내는 방식 또한 인상적이다. 수평적인 트리오의 위상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며, 어쩌면 각 연주의 기능과 역할의 변화에 따른 변화를 공간에 반영하는 트리오의 방식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집단화된 음악적 표출을 이루면서도 개별 공간의 선명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어, 감상에서 큰 재미를 더하기도 한다. 이를 섬세하게 담아낸 후반 프로세싱의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요소가 유겐의 연주를 더욱 극적으로 담아낸 요인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톤 사운드의 차이를 이용해 표현하는 미묘한 뉘앙스의 변화, 테마를 더욱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아름다운 멜로디, 상호 간의 유기적 인과성을 유연하게 확장해 진행하는 음악적 내러티브 등, 유겐 트리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독창적인 매력의 요소는 무척 풍부하고 다양하다. 감각적이면서도 세련미를 잃지 않으며, 진지하면서도 듣는 이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풍부한 감성도 함께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단 한순간도 음악에서 귀를 뗄 수 없는 강한 몰입이 매력적인 앨범이다.

 

 

2023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