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nd

Kai Schumacher - Tranceformer (Neue Meister, 2023)

komeda 2023. 10. 1. 20:34

 

독일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Kai Schumacher의 앨범.

 

1979년생인 카이는 10대 시절 이미 솔로이스트로 데뷔해 클래식을 바탕으로 하는 전문 피아니스트의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다양한 장르의 곡들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더한 작업을 통해, 차츰 자신의 음악적 지평을 확장하기에 이른다. 현재 클래식은 물론 팝, 재즈, 록, 아방가르드 등은 물론 전자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여러 뮤지션들과 함께 풍부한 활동을 소화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음악이 정체불명의 혼잡성을 지닌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개인 기량을 바탕으로 하는 카이의 음악성은 견고하며, 오히려 다양한 장르와의 연관 속에서도 자신만의 빛을 발하는 강한 개성을 입증하기도 한다. 이번 앨범 역시 다양한 장르적 편차를 어떻게 하나의 단일한 음악적 언어로 응집해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을 완성하고 있는지를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곡은 미니멀한 반복적인 루프를 모티브로 상상력을 기반으로 음악적인 이야기를 풀어가는 섬세한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때로는 즉흥적인 이야기처럼 펼쳐지는 라인이 전개되는가 하면, 코드 플로우에 기반해 기본적인 모티브를 이어가는 등, 각 곡마다 미니멀한 테마를 활용하여 다양한 양식의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피아노가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곡의 템포나 테마의 성격에 따라 드럼 등과 같은 주변 악기들의 레이어를 활용하거나, 필드 리코딩이나 여러 이펙터들을 통해 해당 트랙의 캐릭터를 보다 선명하게 연출하기도 하여, 때로는 마치 주변 여러 장르와의 다양한 연관을 자신의 연주를 통해 표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피아노 중심의 현대 작곡을 바탕으로 하는 장르적 엄밀함을 나름 유지하고 있다. 한정된 스케일 내에서 제한된 해당 노트를 활용하는 나름의 준칙에 기반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기본적인 테마 자체의 미니멀한 특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왼손과 오른손의 대비로 연출하는 폴리 리듬과도 같은 효과는 물론, 때로는 마치 시퀀싱을 연상하게 하는 정교한 음의 나열은, 통상적인 해당 양식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카이만의 독특한 몰입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기악적인 재능과 섬세한 손끝의 감각을 활용해, 단순한 반복이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마치 엔벌로프가 이루어지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음악적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특히 본인 스스로 “손의 자연스러운 운동 기능”이라고 묘사한 이러한 기악적 재능을 겉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섬세한 음악적 표현에 응축하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고, 그만큼 카이의 연주에는 다양한 의외성과 변수를 동반하기도 한다. 왼손과 오른손은 각자의 대위적인 위상 속에서 조화와 대비를 연출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템포로 움직이며 독특한 폴리 리듬을 연출하기도 하여, 마치 정교한 시퀀싱을 재연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모든 곡은 마치 하나의 선을 따라 다양한 보폭으로 걸음을 걷는 듯한 긴장을 품고 있으며, 해당 속도에 따라 왼손과 오른손의 대칭이 이루는 다양한 경합과 조화는, 마치 만화경 속에서 이미지와 패턴이 변화하는 듯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전개 속에서도 치밀하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변주를 통해 다양한 의외성을 연출하며 강한 몰입을 유도하기도 하고, 긴장의 응집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미적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카이는 Philo Tsoungu, Moritz Fasbender, Francesco Tristano 등의 동료들과 함께한 트랙들에서도, 보다 확장된 관계와 공간 속에서 이와 같은 모습을 재현하고 있어, 자신의 음악과 자연스러운 일련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카이의 연주가 지닌 현대 음악에서의 확장성을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정교한 시퀀싱과 모듈레이션을 인간의 연주로 재현한 듯한 경이로운 몰입과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자체가 제공하는 풍부한 상상력만으로도 클래식을 넘어선 다른 무엇을 연상하게 하는 인상적인 앨범이다.

 

 

2023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