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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pores - Multizonal Mindscramble (DiN, 2023)

komeda 2023. 10. 12. 20:33

 

Polypores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영국 전자음악가 Stephen James Buckley의 앨범.

 

스테판은 2010년대 중반에 음악계에 자신의 작품을 처음 선보인 이후, 매년 여러 편의 풀-랭스 앨범을 꾸준히 대거 발표하며 활발한 창작을 이어오고 있는 뮤지션이다. 일부 작품에서는 앰비언트나 뉴에이지와 같은 주변 장르의 영향을 반영한 작업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일렉트로닉을 기반으로 하는 특징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샘플링과 같은 요소를 배제하고 다우리스에 가까운 라이브 모듈레이션의 성격을 반영하는 듯한 모습이 특징이며, 사운드 또한 모듈러 신서사이저 특유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나름 퓨어한 전자 음악의 헤드스페이스를 들려주고 있다.

 

앨범은 악기의 장치적인 기능과 성능이 어떻게 음악적인 상상력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 장비가 지닌 다양한 기능과 성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비교적 균일한 사운드의 특징을 지속하여, 개별 라인이 어떤 상호 연관을 이어가며 음악적 플로우를 구성하는지를 선명하게 부각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개인의 음악적 성격을 명확히 하기도 한다. 다양한 모듈레이션이 만들어 내는 사운드의 변화는 물론, 풍부한 패치 아이디어를 활용해 색다른 효과와 음향적 표현을 완성하여, 장치 고유의 특징을 반영한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각각의 사운드가 지닌 고유한 엔벌로프와 패치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변화만으로도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흥미로운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각기 다른 캐릭터를 지닌 음향들을 하나의 흐름 속에 엮어 음악적 형식으로 구성하는 과정 또한 인상적이다. 주변 장르와의 접점이나 경계에 대한 사고를 배제하고, 마치 순수한 일렉트로닉이 지닌 고유한 음악적 언어와 표현에 기반한 미적 창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와 같은 전체적인 특징 속에서도 스테판은 자신만의 고유한 캐릭터를 부각하기 위한 흔적을 담아내기도 한다. LFO나 EG 외에도 복합적인 요소들로 가득한 필터의 모듈레이션이 더해지기는 하더라도, 대부분의 개별 소스는 싱글 오실레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모노폴릭한 특징을 지속하며, 곡의 흐름 속에서도 비교적 균일한 펄스의 톤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유형의 시퀀싱이 플로우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기는 하지만, 키보드를 이용한 연주로 즉흥적인 모티브를 활용한 라인을 전개하며 자신의 음악적 표현을 구체화하기도 한다. 시퀀싱의 렌덤 스텝에 S&H의 요소가 만들어 내는 복합적인 사운드의 변화에서도, 의도를 반영한 한정과 제한을 세밀하게 구성하며, 곡의 흐름에 자신의 음악적 의지를 철저하게 반영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각기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다양한 소스의 복합적이고 유기적인 구성을 지닌 음악적 플로우를 보여주고 있지만, 각각의 라인이 지닌 저마다의 선명한 움직임 안에는 고유한 섬세함을 간직하고 있어, 이 모든 요소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음악을 듣는 과정은 무척 흥미롭다. 순수한 일렉트로닉의 기계적인 외형과는 달리, 그 안에 품고 있는 움직임은 살아 있는 듯한 생동감으로 가득하며, 그 흐름이 전하는 온도는 무척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2023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