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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zanne Ciani & Jonathan Fitoussi - Golden Apples of the Sun (Transversales Disques, 2023)

komeda 2023. 10. 10. 21:08

 

미국 전자음악가 Suzanne Ciani와 프랑스 작곡가 Jonathan Fitoussi의 협업 앨범.

 

전설과도 다름없는 미국 전자음악의 선구자인 수잔과, 이제는 자신의 고유한 음악적 입지를 구축하며 어느덧 중진의 위치에 오른 조나단이 함께 완성한 앨범이라는 점만으로도, 이번 작업에 귀 기울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얼핏 보면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닌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들이 함께 작업한 음악은 완벽한 일체감을 형성하며, 쉽게 도달하기 힘든 균일한 질감을 완성하고 있다. 이는 이들이 작업을 위해 주로 사용한 Buchla와 Moog와 같이, 웨스턴과 이스턴의 서로 다른 기계적 특징과 음향적 특색을 지닌 사운드를, 자신들만의 균일한 텍스쳐로 가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교하면서도 입체적인 기하학적 구성을 완성한 대목과도 무척 유사하다. 서로의 다른 특징을 대비시키고 그 효과를 부각하는 대신, 남다른 섬세함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접근 방식을 통해, 온전한 의미에서의 음악적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인상적인 성과를 선보이고 있다.

 

앨범의 모든 곡은 기하학의 정교한 동적 움직임을 묘사한 듯한 치밀함을 지니고 있다. 랜덤한 구성으로 발생하는 의외의 효과는 물론, 시퀀싱이나 모듈레이션 과정에서의 우연적 요소들을 최소화하고 있어, 모든 레이어는 철저하게 의도에 따라 서로의 관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다. 모든 레이어는 저마다의 고유한 캐릭터를 지닌 사운드 패치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간의 동적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다양한 주변적인 레이어에서도 같은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모노포닉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완성한 사운드는 오실레이팅이나 모듈레이션의 변화를 거의 동반하지 않는 지속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주변적 효과를 위해 활용한 몇몇 레이어를 제외하면 LFO나 VCF와 같은 요소의 조작 또한 거의 없는, 순수한 연속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노이즈와 같은 소스를 활용해 다양한 묘사적 표현을 완성하는 방식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주변적 효과를 위해 활용한 몇몇 레이어에서의 모듈레이션을 통한 변화 역시, 일련의 반복적 패턴에 기반하고 있어, 이 또한 양식적인 활용에 철저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사운드를 이용한 시퀀싱 또한 미니멀한 루프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각각의 요소들은 간결함과 명료함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공간의 동적 움직임을 구체화하는 다양한 주변적인 레이어 또한 일련의 반복적인 동작을 특징으로 하고 있어, 전체적인 사운드의 구성은 각각의 선명함을 기반으로 하는 안정적인 균형과 조화에 큰 역점을 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특히 각각의 레이어는 트리거나 게이트로 서로 연결되지 않은 듯한 독립적인 구성을 이루며 각자의 고유한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하여, 그 중첩의 효과는 무척 입체적인 모습을 띄고 있지만, 클럭에 의해 동기화된 듯한 정교한 일체감을 지니고 있다. 진행 과정에서 사운드의 변화를 최소화하고 있는 각각의 레이어는 저마다의 고유한 캐릭터를 곡이 진행되는 동안 지속하며 안정적인 몰입감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이는 반복적인 동적 움직임을 재현하는 듯한 음악의 특성과 맞물리며 미묘한 몽환적 최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단순한 움직임을 지닌 라인의 조합은, 그 자체로 미묘한 폴리 리듬을 연출하는가 하면, 그 중첩만으로도 독특한 리듬과 그루브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간결하고 명료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복합적인 기하학적 움직임을 포착한 듯한 연주는 마치 정교한 현대 건축의 완성 과정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가 하면, 때로는 일련의 흐름이 서로 교차하며 세밀함과 역동성을 지닌 패턴의 움직임을 담아낸 듯한 인상을 갖기도 한다. 그만큼 정적이면서도 동적이고, 그 흐름을 통해 연출하는 몰입과 몽환의 효과는 강한 힘을 발휘한다. 기기와 장비가 지닌 고유한 특징을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이를 철저한 음악적 통제하에서 자신들의 의지를 실현한, 수잔과 조나단 두 작가의 지적 세련미를 경험할 수 있는 앨범이다.

 

 

20231010